문화·스포츠 문화

포스트 코로나, 온·오프, 현실·가상 오가는 新 한류 르네상스 열린다

코로나 19에도 콘텐츠 수출 증가… 한류 팬 더 늘어

온라인 K팝 공연 성공…웹툰·드라마 등도 인기 확산

당분간 온·오프 동시공략하며 가상 시장 개척 필요

AI 멤버 그룹 에스파 등의 '메타버스' 전략 가동 주목

정부는 규제 완화 등만…‘한류=관제’ 오해낳지 말아야

방탄소년단 ‘Map of the Soul ON:E’ 온라인 콘서트 앵콜 무대. /사진제공=빅히트엔터테인먼트방탄소년단 ‘Map of the Soul ON:E’ 온라인 콘서트 앵콜 무대. /사진제공=빅히트엔터테인먼트



지난달 30일 저녁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 위치한 세계 최고층 빌딩 부르즈 칼리파의 전면애 방탄소년단(BTS) 멤버 뷔의 생일을 축하하는 영상이 등장했다. 뷔의 자작곡 윈터베어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163층 828m 외벽을 꽉 채운 3분짜리 광고 영상은 중국 팬들이 최소 1억 원을 들여 준비한 것이었다. 영상은 곧바로 트위터 등 SNS를 통해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미국 뉴욕의 타임스퀘어, 영국 런던 워털루역, 일본 도쿄와 오사카의 번화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중국 베이징 등지에서도 현지 팬들이 준비한 다양한 축하 영상이 대형 전광판 등을 통해 송출됐다.

이날 이벤트는 명실공히 월드 스타가 된 BTS의 위상, 나아가 전 세계에서 한류의 입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지난해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 석권을 시작으로 한류는 전 세계에서 어느 때보다 뜨거운 돌풍을 일으켰다. 특히 코로나 사태로 전 세계가 단절된 상황에서도 한류는 새 기술과 소통 방식, 문화 소비자의 자발성에 힘입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가볍게 뛰어 넘으며 새 가능성을 여는 데 성공했다.


한편으로는 한류의 미래에 대한 부담이 커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이 한류의 정점은 아니다. 아직 한류의 저력이 모두 발휘된 것이 아니며,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더욱 빛나는 신(新)한류의 전성시대가 펼쳐질 것이라는 게 한국 문화계의 기대다. 그러기 위해서는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저변을 넓힌 한류의 장점을 더욱 체계적으로 극대화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지난 달 30일 부르즈 칼리파 외벽을 수놓은 BTS 뷔 생일 축하 영상./부르즈칼리파 트위터 캡처지난 달 30일 부르즈 칼리파 외벽을 수놓은 BTS 뷔 생일 축하 영상./부르즈칼리파 트위터 캡처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산 와중에도 지난 해 한국 콘텐츠 수출은 오히려 늘었다. 전년 대비 5.1~6.7% 증가한 109억2,000만~110억9,000만 달러 선으로 추산됐다. 박혁태 콘진원 산업정책팀장은 “코로나 19 사태에도 게임 수출이 절대적 영향을 미쳤으며 그 외 웹툰·애니메이션·방송 등 비대면 중심 콘텐츠가 성장했다”고 설명했다.

성과는 그야말로 눈부셨다. 애니메이션 ‘핑크퐁 아기상어’는 유튜브 누적 조회수 72억 건을 넘기며 역대 조회수 1위에 올랐다. ‘스위트홈’, ‘킹덤2’ 등의 드라마는 아시아를 중심으로 세계 각국에서 인기를 끌었다.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은 한일 관계 악화로 인해 꺼져가던 한류의 불꽃을 되살렸다.



또 다른 비대면 문화 영역이라 할 수 있는 문학·출판도 조용히 세계 각지로 뻗어 나갔다.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 손원평 작가의 ‘아몬드’ 등이 세계 각국에서 번역 출간됐고 최은영, 윤고은, 한강, 김금숙 작가 등에 대한 러브콜도 이어졌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지난해 8월부터 5개월 간 온라인으로 진행한 출판 상담회에는 미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 대만 등 12개국의 바이어들이 참가해 소설, 만화, 에세이 등에 대한 폭 넓은 관심을 보였다.

지난 10월 베트남 출판사들을 대상으로 화상 방식으로 진행 된 ‘2020 찾아가는 도서전’/사진제공=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지난 10월 베트남 출판사들을 대상으로 화상 방식으로 진행 된 ‘2020 찾아가는 도서전’/사진제공=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물론 한류의 중심에서 가장 큰 인기를 누린 것은 K팝이다. 지난해 반신반의 속에 시도한 유료 온라인 콘서트는 인공지능(AI)·가상현실(VR)·증강현실(VR) 등을 총동원한 현란한 무대를 무기로 전 세계 팬덤을 붙잡으며 새로운 장을 열었다. BTS의 경우 온라인 콘서트 ‘맵 오브 더 소울(Map Of The Soul ON:E)’이 최소 500억 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


비대면 중심의 흐름은 올해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엔터테인먼트 업계 관계자는 “올해 코로나 19가 진정되더라도 K팝 가수들의 월드 투어나 대규모 한류 행사를 열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어쩔 수 없이 온라인을 통한 접근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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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엔터테인먼트의 신인 아이돌 그룹 ‘에스파’ 멤버 ‘카리나(사진 오른쪽·본명 유지민)’가 자신을 본뜬 가상세계 AI 멤버 ‘아이-카리나’와 대화하고 있다. /SM엔터테인먼트SM엔터테인먼트의 신인 아이돌 그룹 ‘에스파’ 멤버 ‘카리나(사진 오른쪽·본명 유지민)’가 자신을 본뜬 가상세계 AI 멤버 ‘아이-카리나’와 대화하고 있다. /SM엔터테인먼트


결국 한껏 달궈진 한류 열기를 장기적인 흐름으로 이어가기 위해서는 당분간 온·오프라인을 동시에 공략하는 전략이 불가피하다. 최항섭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는 “오프라인 공연이 불가능한 지금 해외에서 인기를 얻으려는 K팝 아이돌들에게는 소셜 미디어와 온라인 플랫폼의 활용이 중요하다”며 “중소 기획사들도 영상, 콘텐츠, 무대를 만들 수 있도록 정부 차원서 판을 깔아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올해 중소형 기획사 지원을 위한 온라인 콘서트의 인프라 구축 사업 예산을 배정했다.

다만 이런 움직임이 ‘국가 주도’로 비쳐 질 수 있는 점은 경계해야 한다. 일본이나 중국 일각에서는 한류 인기를 두고 ‘관제’라고 평가절하 하는 목소리가 들리고, 국내에서도 소수 스타의 인기에 편승하는 정부의 ‘숟가락 얹기’에 대한 거부감이 적지 않다. 이는 한류 인기의 원동력 중 하나인 자발성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대형 기획사의 한 고위 관계자는 “사실 정부 행사에 안 부르는 게 가장 쉽게 도와주는 것”이라며 “문화계에서 정부의 각별한 관심을 필요로 하는 영역과 사람들은 따로 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세상이 빠른 속도로 변하는 만큼 새로운 시도도 중요하다. 이 대목에서 주목받는 게 3차원 가상세계를 지칭하는 ‘메타버스(Metaverse)’다. 현실 세계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 추상을 뜻하는 ‘메타(Meta)’의 합성어다. 송진 콘진원 미래정책팀장은 “아바타를 통해 시공간의 물리적 제약을 극복하고, 다양한 장르와 융합을 통해 스토리 텔링을 풍부하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메타버스를 공략하려는 시도가 더 활발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미 현실 세계에서 하는 일은 가상 세계에서도 그대로 벌어진다. 블랙핑크가 네이버제트의 3D 아바타 앱 ‘제페토’에서 아바타를 이용해 개최하 팬 사인회에는 4,600만명이 몰린 바 있다. SM엔터테인먼트의 신인 걸그룹 ‘에스파’는 현실 멤버 4명과 AI로 만든 이들의 아바타 멤버 넷이 동시에 활동해 현실·가상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있다.

박찬욱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센터장은 “비대면 사회에서 문화예술의 온라인화는 더 늘어날 것이며 실재감을 높이기 위한 실감기술의 구현 수준이 매우 높아질 것”이라며 “이는 사실상 4차 산업혁명 진입을 위한 준비과정의 성격도 띠는 만큼 산업 전반을 살피는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준호·정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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