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제 불가능한 수준의 위조방지시스템을 만드는 새 원천기술이 나왔다. 이 기술은 재료분야 최고 권위지인 네이처 머티어리얼(Nature Materials)에 4일자(현지시각)로 공개됐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 이지석 교수 연구팀은 미세 ‘공액고분자(반도체처럼 전도성이 있는 고분자)’ 입자 내부에 위조 식별 정보를 다중적으로 숨겨 놓는 새로운 제조 기술을 개발했다고 4일 밝혔다. 미세 입자에 3차원 홀로그램과 구조색, 형광 특성 등의 보안 정보를 다양한 형태와 조합으로 구현함으로써 위조가 불가능하도록 하는 기술이다.
이지석 교수는 “이 기술을 활용해 머리카락 굵기의 입자 내부에 명화가 고해상도로 프린팅된 위조방지 그래픽스티커와 태건트(식별정보가 포함된 위조방지첨가제) 대량 제조 또한 가능하다”며 “보안 산업 분야에서 혁신적인 원천 기술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연구팀이 개발한 공액 고분자 입자는 보는 방향에 따라 색깔이 달라지는 특성이 있다. 이 입자를 물에 담그면 구조색이 사라지면서 입자 내부에 저장된 3차원 홀로그램이 나타난다. 또 입자에 빛을 비추면 3차원 홀로그램 형광 패턴이 생긴다.
이 교수는 “입자(매질) 내에 구현된 3차원 홀로그램은 착시현상을 이용하는 기존 홀로그램과 달리 보는 각도에서 모두 형태가 다른 진정한 삼차원”이라며 “공액 고분자 매질에 ‘풀 패러랙스(full-parallax)’ 특성을 지닌 3차원 홀로그램을 구현한 것은 세계 최초”라고 밝혔다.
5만원 지폐에는 은선, 숨겨진 그림 등 독립된 위조방지장치가 숨어있는데, 이 입자로 여러 위조방지장치를 하나의 글자에 집약시킬 수 있다. 보는 방향에 따라 다른 글자가 나타나고, 물에 담갔을 때 글자가 사라지는 위조방지장치가 대표적 예이다. 또 글자의 픽셀 역할을 하는 입자 내부에는 3차원 홀로그램이 저장돼 있어 픽셀이 또 다른 위조방지장치가 된다.
이 기술은 격자무늬, 빗살무늬와 같은 ‘마스크 필터’ 사이로 빛을 통과하게 해 광경화 공액 고분자에 가해지는 빛의 양을 군데군데 조절하는 것이 핵심이다. 빛의 양에 따라 고분자 굳기와 굴절률 등이 삼차원적으로 달라져 구조색과 홀로그램 문양이 나타난다. 구조색과 홀로그램 문양은 마스크 종류를 바꿔 조절한다.
또 미세 공액고분자 입자 제조에 쓰인 기술은 고정밀·자동화 공정이라 쉽게 응용이 가능하다. 연구진은 이를 응용해 머리카락 굵기 입자 내부에 고해상도 명화를 프린팅 했다.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시중에 파는 확대경만으로 쉽게 명화를 볼 수 있다. 또 태건트(위조방지첨가제) 역할을 할 수 있는 미세입자를 대량으로 제조하는데도 성공했다. 이 미세입자는 가로, 세로로 4개씩 총 16개의 격자가 있으며 각 격자 당 4개의 색상을 구현할 수 있다. 격자 당 발현되는 색상 조합을 다르게 할 경우 미세입자 1개당 약 40억(416) 이상의 암호 코드를 만들 수 있다.
김정욱(공동교신저자) 서강대학교 연구팀과 박정훈 (공동연구자) UNIST 바이메디컬공학과 연구팀은 유한요소해석법을 이용해 물과 같은 극성용매에서 고분자 입자가 수축돼 발생하는 3차원 홀로그램의 형태를 예상할 수 있었으며, 곽상규(공동교신저자) UNIST 에너지화학공학과 연구팀은 다차원 분자 전산모사 기법을 이용해 미세입자의 형광 신호 발생 원인을 규명했다.
제 1저자인 오종원 UNIST 에너지화학공학과 박사과정 연구원은 “연구에 쓴 소재는 외부환경에 반응해 광학신호 변화를 보이는 입자를 쉽게 제작할 수 있어 빛을 능동적으로 제어하는 메타물질로도 응용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