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의 기억 유지 방식을 규명하면서 자폐증·조현병·치매 치료에도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성인의 뇌가 기억을 유지하는 방식을 처음으로 규명한 정원석(사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생명과학과 교수는 5일 서울경제와 인터뷰를 갖고 “이번 연구를 바탕으로 ‘별아교세포’가 시냅스를 제거하는 현상을 조절하게 할 수 있다면 뇌 신경 질환 치료에 한 발짝 더 다가설 수 있을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정 교수 연구팀이 한국뇌연구원 박형주 박사팀과의 공동 연구를 통해 규명한 이번 결과는 지난해 12월 23일(영국 현지 시간) 최상위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에 공개됐다. 뇌에서 기억을 담당하는 시냅스가 제거되는 새로운 방식 규명을 밝히고 뇌·인지과학 연구 분야에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한 점을 인정받은 것이다.
정 교수 연구팀은 뉴런을 둘러싸고 있는 신경교세포 중 가장 숫자가 많은 ‘별아교세포’가 뇌가 급격히 발달하는 시기에 시냅스를 제거한다는 자신들의 기존 연구 결과에 착안해 연구를 진행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시냅스 제거는 미세아교세포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게 당시 학계의 주류 의견이었는데 혼자 별아교세포 연구에 집중하다 보니 ‘이게 진짜 맞는 것인가’라는 두려움도 있었다”고 토로했다.
신경세포인 뉴런과 뉴런 사이를 연결하는 시냅스는 뇌 안에서 정보를 학습하고 기억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기억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기존의 시냅스는 사라지고 새로운 시냅스가 생성된다. 그러나 어떻게 기존의 시냅스가 사라지고, 이렇게 사라지는 현상이 뇌의 기억 형성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신경교세포는 뇌에서 뉴런을 도와 뇌 항상성 유지 역할을 수행하는 세포로 ‘별아교세포’ ‘미세아교세포’ ‘희소돌기아교세포’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 세포들 중 미세아교세포가 시냅스를 제거하는 주된 세포일 것이라는 게 기존의 학설이었지만 연구팀은 이를 뒤집고 별아교세포에 의한 시냅스 제거 현상이 뇌 신경 회로의 기능과 기억 형성에 필수적임을 밝혀냈다.
정 교수는 “조현병·자폐증·치매 등 대부분의 뇌 신경 질환은 시냅스의 숫자와 관련돼 있다”며 “조현병·자폐증은 뇌 발달 시기(엄마 배 속, 사춘기 등)에 시냅스에 이상이 발생하는 것이고 치매는 퇴행성으로 시냅스 숫자가 감소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관련 연구들이 대부분 미세아교세포를 대상으로 진행 중이었는데 앞으로는 별아교세포의 기능에 주목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뉴런(신경세포)을 중심으로 하는 연구자들과 함께 연구를 진행 중이며 향후 시너지가 클 것”으로 기대했다.
그는 이번 연구에 도움을 준 삼성에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정 교수는 “뇌 연구를 위해서는 고성능 현미경 촬영이 꼭 필요한데 해당 장비 가격이 대당 수억 원에 달해 어려움이 컸다”며 “다행히 삼성미래기술육성사업과 인연이 닿아 지난 2017년부터 삼성의 지원을 받아서 실험실을 제대로 마련하고 연구를 시작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삼성미래기술육성사업’은 우리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과학기술 연구 분야 육성·지원을 목표로 삼성전자(005930)가 2013년부터 1조 5,000억 원을 출연해 시행하고 있는 연구 지원 공익사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