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지에서 가장 큰 생명체인 코끼리는 암에 걸리지 않는다. 인간과 개 등 포유류에게서 흔하게 발견되는 질병인 암을 코끼리가 피해갈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신간 ‘굉장한 것들의 세계’는 각 분야 최상의 생명체의 비밀을 다룬 대중 과학서다. 기자이자 언론학 교수인 저자는 그동안 우리가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거의 몰랐던 생물들의 숨겨진 능력을 파헤친다. 지구 상에서 가장 큰 생물부터 가장 강인한 생물, 가장 똑똑한 생물까지 각 분야에서 최상위 계층에 있는 생물들은 오랜 시간 환경 변화에 맞춰 극한의 진화를 거듭해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장 먼저 저자의 관심을 끈 건 코끼리다. 아프리카코끼리는 공룡 이후 지구에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650만여 종의 육지생물 중 가장 큰 생명체다. 코끼리는 인간과도 여러 공통점을 갖고 있다. 둘 다 사회성 동물로서 매우 복잡한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며, 몸집에 비해 커다란 두뇌를 지녔고 유전체도 많은 부분이 겹친다. 코끼리 유전자 중 4분의 3 가량은 인간의 것과 유사한 형태를 띤다.
주목되는 것은 코끼리가 암에 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인간을 비롯한 생명체는 세포가 분열하면서 성장하는데, 암이 발생하는 이유는 부분적으로 이 세포분열 때문이다. 그런데 크기로 보면 인간보다 100배는 더 암에 걸려야 할 코끼리의 암 발생률은 왜 제로에 가까울까? 그 이유는 돌연변이 세포가 자살하도록 유도하는 유전체, 바로 암 억제 유전자 때문이다. 이는 지난 수 천 년 동안 단순히 커다란 동물로만 알고 지내던 코끼리 진화 연구를 통해 최근에야 밝혀진 사실이다. 현재 코끼리를 통해 발견된 이런 유전자를 암을 유발하는 종양에 투입하기 위한 혁신적인 연구가 진행 중이다.
생물 진화에도 수많은 비밀이 숨겨져 있다. 책에는 4,000년 넘게 살면서 조금도 늙지 않는 강털소나무와 초당 자기 몸길이의 300배를 이동하는 진드기, 고환이 작을수록 고함을 크게 지르는 고함원숭이, 기후 위기를 끊임없이 경고해온 코키개구리 등 다양한 생물들의 비밀이 담겨 있다. 이 밖에 심해 생물 모노라피스쿠니, 신체 재생능력을 갖춘 아홀로틀까지 책은 그간 대중은 물론이고 과학계에서도 조명받지 못한 다양한 생물과 생물 진화의 역사 등을 다룬다.
저자는 “다양한 생물에 대한 일반의 관심은 관련 생태계 연구는 물론 생물 보존과 인류의 생존에도 큰 이득으로 돌아온다”고 강조한다.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다른 생물들에 대한 관심이 필요한 이유다. 2만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