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는 해와 뜨는 해가 보인다.’ 새해 들어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 내림세와 여야 유력 대선 주자 3인의 선두 경쟁을 지켜보면서 한 전문가가 꺼낸 화두이다.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지난해 12월 40% 밑으로 떨어진 데 이어 올 초에 30% 중반대까지 추락했다. 리얼미터가 YTN 의뢰로 4~6일 전국 유권자 1,50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문 대통령의 국정 운영 지지율은 35.1%로 떨어졌다. 21대 총선 직후인 4월 4주 차에 긍정 평가가 64.3%였으므로 8개월 만에 지지율이 거의 반 토막이 된 셈이다. 반면 이재명 경기지사와 윤석열 검찰총장,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대선 주자 지지도에서 각각 15~30%의 고공 행진을 하면서 삼파전을 벌였다. 이 대표의 지지율은 주춤했지만 이 지사와 윤 총장은 ‘비룡(飛龍)’의 기세를 보여줬다.
‘권력 총량 불변의 법칙’이라는 말이 있다. ‘현재 권력’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진 만큼 ‘미래 권력’인 대선 주자들의 선호도는 뛰어오른다는 것이다. 일출의 원심력이 석양의 구심력을 약화하는 현상이 가속화하면 레임덕이 불가피하다. 레임덕은 뒤뚱거리며 걷는 오리다. 본래 18세기 런던 증시에서 빚을 갚지 못해 제명된 증권 거래원을 가리켰다. 19세기 남북전쟁 당시 미국으로 전파된 레임덕은 임기 말 대통령의 권력 누수 현상을 표현할 때 쓰였다. 1987년 이후 한국의 역대 대통령은 레임덕이나 더 심한 권력 공백 현상인 데드덕을 피하지 못했다.
한 친여(親與) 진보 성향 신문은 최근 ‘문 대통령은 레임덕을 피할 수 없을까’라는 주제로 논설위원 토론회를 가졌다. 한 참석자는 “초심으로 돌아가서 지혜와 힘을 모은다면 한국 정치 사상 처음으로 레임덕 없는 대통령도 가능하리라 본다”고 정리했다. 필자는 정치학자를 비롯한 전문가들에게 ‘레임덕에서 자유로운 대통령’이 과연 가능한지를 물었다. 한결같은 대답은 “독재 국가를 제외하고는 절대다수 대통령이 정도와 시간의 차이는 있지만 레임덕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공구리(콘크리트) 지지층’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최진 정치학 박사는 ‘레임덕 현상의 이론과 실제’라는 책을 통해 한국 역대 대통령의 권력 누수를 심층 분석했다. 최 박사는 레임덕의 5단계 특징으로 △대통령 지지도의 지속적 하락 △대통령의 권위 추락 △여권 내부의 분열 △측근·친인척 비리 도미노 △차기 대권 주자들의 차별화 전략 등을 들었다. 그는 “지난 연말 이후 문 대통령의 지지율 급락과 대통령 권위 추락이 동시에 나타났다”면서 “여권 내부 분열 조짐도 있다”고 진단했다. 다른 정치학자는 “정권이 검찰 수사를 통제하는 바람에 역대 정권의 4년 차 증후군이었던 연쇄 권력형 비리 사건들이 터져 나오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등에 대해 성역 없는 수사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리더십 공백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편 가르기 정치도 지지율의 무한 추락을 일단 저지시켰다.
다수의 전문가는 레임덕 개시점으로 ‘대통령 지지율 25% 선’을 꼽았다. 한 전문가는 “지지율이 25% 밑으로 떨어질 경우 4명이 모인 자리에서 3명이 비판적 태도를 보이면 나머지 한 사람은 정권 편들기를 주저하면서 침묵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지지층의 도망 현상까지 생긴다는 것이다. 지지율이 33% 정도일 경우 지지자 1명이 2명의 비판에 맞서 반박 논리를 펴는 상황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지지율이 25% 아래로 떨어질지는 4월 서울·부산시장 보선을 거치면서 결정될 것이다.
조기 레임덕으로 국정이 아노미 상태로 가면 국가와 국민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경제를 살리고 안보를 튼튼히 하면서 국익을 지키려면 대통령이 ‘레임덕의 강’을 순조롭게 건너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리더십을 회복하려면 초심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제 가슴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열정으로 뜨겁습니다”라고 역설했다. ‘가지 않은 길’이 분열이 아닌 진짜 통합이어야 터널 끝에 빛이 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