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사의 자영업자·중소기업에 대한 원리금 상환 유예 조치가 장기화할 경우 금융사 자산 건전성 지표가 무력화될 수 있다는 경고가 국내 대표 신용평가사로부터 나왔다.
나신평은 최근 ‘금융업 2021년 방향성-이제는 부채의 역습에 대비해야 할 때’ 보고서에서 “만기 연장 조치가 장기간 지속되면 자산 건전성 지표의 왜곡이 심각한 수준으로 확대될 우려가 있다”며 “건전성 지표는 의미가 없어지며 금융 당국과 신평사도 실질에 부합하는 정확한 판단을 하기가 어려워진다”고 지적했다.
현재 모든 금융사는 자영업자·중소기업이 신청하면 대출 원금은 물론 이자 상환도 유예해주고 이자도 정상적으로 받고 있다고 장부에 기록하고 있다. 기업 부실 징후를 감지해야 하는 신평사 입장에서 관련 지표가 현실을 보여주지 못하자 우려를 표명한 것으로 풀이된다. 나신평은 “실물경제가 역성장하는데 금융사의 부실 여신 비율이 사상 최저치를 경신하는 모습은 상식적이지도,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며 “돈을 빌린 사람이 더 이상 차입금을 상환할 능력이 없는데도 금융사가 지속적으로 대출 기한을 연장해주는 연명대출(Evergreen Loan)은 표면적으로 정상 여신이지만 그 실질은 부실 여신임을 지난해 7월 지적한 바 있다”고 강조했다.
전 금융권 자영업자·중소기업 원리금 상환 유예는 지난해 4월 시작돼 9월 말 일몰을 앞두고 올해 3월까지 연장됐다. 당국은 이달 중 유관 기관 협의를 통해 연착륙 방안을 모색할 계획이다. 시중은행, 정책 금융기관, 제2금융권 등의 대출 만기 연장 건수는 지난달 4일 현재 38만 건, 금액으로는 115조 4,000억 원에 달한다. 금융지주들은 정책을 그대로 연장하는 것은 부실 발생 시점을 뒤로 미뤄 일시에 문제가 터질 가능성이 있다며 일부 부실 예상 기업을 솎아내는 등의 선별적 연장을 선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