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아모레퍼시픽그룹 매출이 5조원 이하로 급락, 성장의 시계바늘이 6년 전으로 되돌아가면서 서경배 아모레그룹 회장의 포트폴리오 전략이 참패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실제 럭셔리 브랜드와 온라인 중심의 판매 채널로 재편된 중국 화장품 시장의 변화를 예측하지 못한데다 중국 관광객과 따이궁에 의존하는 면세점 전략을 수년간 수정없이 유지해 왔다. 결국 기업의 턴어라운드를 위한 ‘피보팅(pivoting·외부 환경에 따른 사업 아이템 및 방향전환) 전략’이 부재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11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아모레그룹 매출은 4조5,000억~5조원으로 회귀한 것으로 추정된다. 2014년 4조7,000억원이던 아모레그룹 매출은 이후 2016년 역대 최대 매출인 6조6,976억원을 찍으며 2019년까지 6조원대를 유지해왔다.
지난해 실적 부진의 배경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영향도 있지만 사드 보복, 메르스 사태 등의 악재에 따른 매출 타격을 경험했으면서도 만일의 환경 변화에 대비한 포트폴리오 및 채널 전략을 짜놓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실제로 중국 시장의 경우, 매출의 절반 이상을 중저가 브랜드 이니스프리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이미 온라인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돼 왔고 고가의 럭셔리 브랜드만 고공행진 중이다. 증권사의 한 애널리스트는 “아모레퍼시픽은 중국에서 고가제품의 매출 기여도가 낮다”며 "글로벌 화장품 브랜드나 LG생활건강 등은 이런 트랜드에 맞는 제품으로 코로나19 종식을 선언한 중국 시장을 공략하고 있는 반면 이니스프리 로드숍은 계속 문을 닫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내수 시장에서도 아모레 실적의 투톱을 이루던 면세점과 로드숍이 무너지며 매출 하락폭을 키우는데 가세했다. 하늘길이 막히면서 지난 3·4분기 국내 면세점 전체 매출은 전년 동기대비 35% 감소했는데 아모레퍼시픽의 면세점 매출은 50%가 줄었다. 반면 이 기간 2% 하락에 그쳤다. 비대면 경제의 활성화로 방판과 백화점 매출도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아모레의 성장을 이끌어 왔던 로드숍 역시 명동, 가로수길, 강남역 등 유동인구가 많았던 상권이 몰락하며 덩달아 문을 을 닫고 있다. 2018년 말 기준 아리따움, 이니스프리, 에뛰드하우스 등 3개 로드숍은 2,257개로 국내 화장품 가맹점의 61%를 차지했지만 2019년부터 지난 8월까지 20개월간 661곳이 폐점했다.
모든 판매 채널 가운데 온라인 매출만 유일하게 30% 가량 늘어 나면서 아모레퍼시픽은 올해 디지털화에 가속력을 내며 뒤늦게 매출 부진을 씻겠다는 각오다.
그러나 이또한 쉽지 않은 현실이다. 국내에서 가맹점주들과의 갈등으로 쉽게 라방(라이브 방송) 등과 같은 디지털 마케팅을 펼치기 쉽지 않은 입장이다. 아모레가 과거 디지털 전환을 이유로 온라인에서 브랜드 전용관을 만들어 가맹점에서 살 수 없는 제품을 팔고 가격을 무너뜨리자 가맹점주들이 피해를 호소하며 사측과 갈등을 빚었기 때문이다. 증권가 애널리스트는 “아모레가 올해 디지털 강화에 힘을 주겠다고 하지만 이는 역직구가 활발한 중국 시장에 국한된 것”이라며 “국내에서는 디지털 마케팅을 언급하다보면 기존 사업자들과 충돌 가능성이 높아 국내에서 라이브방송을 대놓고 활발히 할 수 없는 진퇴양난에 놓여 있다"고 전했다.
한편 아모레는 2년간 현재 9,000억원대 후반의 라네즈를 설화수의 뒤를 잇는 1조원대 메가 브랜드로 키운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지난해 말 조직개편에서 설화수와 라네즈를 전무급이 이끄는 최상위 조직 단위인 ‘유닛’으로 승격시키고 올해 라네즈 키우기에 시동을 걸었다. 새로운 것을 모색하는 대신 기존 브랜드 강화에 힘을 모으고 모든 채널에서 고루 사랑을 받는 제품을 앞세운다는 전략이다. 그 대표 제품으로 설화수의 자음생 라인과 윤조에센스, 라네즈의 퍼펙트리뉴 라인과 네오쿠션, 이니스프리의 블랙티유스앰플과 그린티 라인 등을 내세우고 있다. /심희정 라이프스타일 전문기자 yvette@sedaily.com
/심희정 기자 yvett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