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아침에] '버블 열차' 누가 멈춰 세울 것인가

<김영기 논설위원>

정치적 승리 급한 집권 세력

성장률·주가 3,000 연일 강조

'돈의 파티'는 영원하지 않아

거품 경제 후유증 벌써 걱정




문재인 대통령은 정권을 내놓는 참혹함을 뼛속으로 느꼈다. 노무현 정부에 몸담았다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사람이 유랑의 세월을 보냈다. 관료 출신의 현직 장관은 참여정부 당시 1급까지 올랐다가 보수 정권 9년 내내 ‘강제 칩거’를 당한 끝에 현 정부 들어서야 부활했다. 문 대통령이 대권에 도전한 데는 폐족(廢族)이 된 동지들에 대한 연민이 작용했을 것이다.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20년 집권론’ 역시 다시는 정치적 죽음을 당하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집권 여당은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부터 내년 대선까지 승리를 지킬 전략적 수단을 총동원할 것이 자명하다.

하지만 현실은 여권에 우호적이지 않다. 무엇보다 부동산 폭등은 정책 실패가 부른 참상(慘狀)이다. 야권은 대선까지 부동산 문제를 물고 늘어질 것이다. 여권은 어떤 식으로든 방어할 카드가 필요한데 바로 성장률과 주가다. ‘나랏빚으로 만든 분식 성장’ ‘실물 없는 유동성 거품’이라고 걱정 어린 진단을 할지언정 선거 때만 마법을 부리는 여권의 전략가들이 이를 정치적 비난으로 돌려세우는 일은 어렵지 않다. 돈의 파티는 소득 주도 성장이 가져온 참담한 성적표마저 잊게 만들었다. 문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부동산 문제에 고개를 숙이면서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의 성장률’ ‘주가 3,000’을 재차 강조한 것은 여권의 선거 전략과 다르지 않다.


경제를 정치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정작 우리를 걱정하게 하는 것은 국가의 미래다. 경제학적으로 성장률이 중요하다지만 이 수치가 경제의 실질(實質)을 전부 반영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따진다면 신용카드 거품으로 7%의 고성장을 만든 지난 2002년 김대중 정부의 정책은 역사에 남을 ‘작품’이다. 금융 문외한까지 신용카드를 지갑에 꽂는 쾌감을 느끼면서 그해 카드 발급은 1억 장을 넘겼다. ‘플라스틱(카드) 축배’ 속에서 소비자들은 30%의 현금 서비스를 쓰면서도 무서움을 느끼지 않았다. 거품의 몰골이 드러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우리 경제는 1년 만에 혹독한 후유증을 앓았고 뒷수습은 오롯이 노무현 정부의 몫이었다. 환란의 한파가 몰아친 1997년에도 143만 명에 머물던 신용 불량자는 2003년 400만 명을 향해 치달았고 이 중 60%가 신용카드에서 발생했다. 사상 최대 이혼율과 범죄·자살의 증가까지, 거품 경제의 폐해가 얼마나 무서운지 문 대통령과 지금의 집권 세력은 똑똑히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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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정치적 승리가 더 급한 여권에 ‘제2의 카드 대란’에 대한 우려가 귀에 들어올 턱이 없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주식시장이 국민 재산 증식의 무대가 되도록 할 것”이라고 말하는 마당에 버블 경제를 얘기하는 것은 반정부주의자의 딴죽걸기에 불과하다. 집권 세력은 “우리 경제와 기업 실적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된 것”이라며 찬가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집토끼가 된 동학 개미들에게 여권은 보궐선거를 앞두고 공매도 금지 연장이라는 선물을 또 한 번 안겨줄 가능성이 농후하다. 개미들은 주가가 조정을 받는 순간 각종 연기금이 정권의 보위 부대로 나서 시장을 떠받칠 것이라고 의심하지 않는다.

세계적 투자자인 짐 로저스는 국내 방송에 출연해 “(한국의 주식시장에) 끝이 다가오고 있다”면서도 동학 개미들에게 조언을 해달라는 말에는 “말해도 듣지 않을 것”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번에는 다르다”고 외치는 시장과 이를 방조하는 정부와 정치인들에게 “돈의 파티는 영원하지 않다”고 외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2013년 ‘헬리콥터 머니’의 파편이 강타한 ‘긴축 발작(taper tantrum)’의 쇼크조차 개미들에게는 흘러간 유행가에 불과하다.

우리 시장은 이제 멈추는 순간 쓰러지는 외발자전거가 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나라 전체가 빚으로 얼룩진 폭주 열차를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차기 정부가 버블의 기관차를 멈춰 세울 수 있을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young@sedaily.com

김영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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