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두고 야권의 힘 싸움이 격해지고 있다. 국민의힘은 제1야당을 중심으로 야권단일화를 이뤄야 정권교체가 가능하다고 보고 연일 제3 지대 인물들을 압박하고 있다. 반면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당에 구애받지 않고 반드시 이길 수 있는 인물이 나서야 한다는 입장이다. 야권단일화가 어떤 결론이 나는지에 따라 서울시장 선거 이후 야권의 지형이 통째로 변할 수 있다. 2018년 지방선거처럼 야권이 싸우다가 선거가 여당에 유리하게 넘어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국민의힘 “정권심판 안철수 1인으로 안 돼”
국민의힘 관계자는 21일 야권단일화에 대해 “안철수로 선거에서 승리하고 나면 대선은 어떻게 되는지가 없다”고 설명했다. 최근 국민의힘이 안 대표와의 단일화를 미루고 우선 당내 후보를 먼저 뽑기로 한 데는 이 같은 우려가 작용했다는 것이다.
야권은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지면 정권교체가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서울시장 선거가 인구 1,000만 명의 서울시와 1,300만 명이 있는 경기도, 인구 300만 명의 인천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안 대표를 중심으로 야권단일화가 이뤄지면 4월 보궐선거는 사실상 ‘1인 플레이’가 된다. 이 경우 국민의힘은 더욱 힘이 빠지고 내년 대선에서 정권교체가 어려워진다는 분위기가 내부에 팽배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민주화 이후 치러진 직선제 대통령선거에서 거대 양당 후보가 아닌 제3 지대 후보가 당선된 적은 없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3당 합당’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은 ‘DJP 연합’으로 후보를 통일했다.
이 관계자는 “국민의당은 서울시장 선거에서 이겨도 의석수가 3석인 정당이고 대선주자도 없어진다”며 “‘정권심판’이 서울시장 선거의 성격인데 안 대표가 이겨도 중심이 되는 거대 정당 없이는 정권교체가 힘들다”고 지적했다. 제1야당인 국민의힘을 중심으로 야권 인사들이 모여야 대선에서 이길 수 있다는 말이다.
국민의힘 지도부와 대선주자들도 반드시 제1 보수정당 중심의 단일화를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합심과 단합해서 빼앗긴 서울시정을 다시 맡아 행복하고 내년 대선에서 재집권을 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유승민 전 의원도 “제발 우리당 후보로서 자존감 가지자는 말씀 꼭 드린다. 이 자리 후보들 어느 한 분 빼놓지 않고 당 밖의 후보들보다 훌륭하다 생각한다”고 했고, 원희룡 제주도지사도 “4월 치를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결코 져선 안 된다”며 “내년 3월 정권교체를 위한 전환점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안철수 “합리적 개혁세력 포함 새로운 야권 필요”
문제는 안 대표가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 등 두 개의 거대정당으로 나뉘어 대통령을 뽑은 낡은 구도를 깨고 싶어 하는 데 있다. 무엇보다 국민들이 국민의힘을 대안세력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안 대표가 지난 11월 ‘국민미래포럼’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을 앞에 두고 한 강연에서도 드러난다. 당시 안 대표는 주호영 원내대표 앞에서 “죄송하지만 (국민의힘으로는) 정권교체가 어렵다”, “신뢰가 없고 비호감 많아 대안이 안 된다”, “친이·친박의 대립, 개혁세력으로 인식이 없다”며 비판한 바 있다. 그러면서 “국민이 다시 관심을 두고 귀를 기울일 것이고, 중도뿐 아니라 합리적 개혁을 바라는 진보까지도 다 포괄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안 대표는 지난 19일 “서울시장 보궐선거 경선 플랫폼을 야권 전체에 개방해달라”고 요구했다. 이는 안 대표가 말하는 야권혁신플랫폼과 궤를 같이하는 주장이다. 야권의 울타리를 넓혀서 모두가 경쟁하자는 것이다. 이를 통해 보수뿐만 아니라 중도, 진보개혁세력까지 야권으로 모으자는 제안이다. 국민의힘만으로는 정권교체가 어렵다는 생각이 바뀌지 않았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단일화 결과 따라 대선지형도 요동 "쉽지 않다”
정권교체 문제까지 얽혀있기 때문에 야권단일화가 당장 성사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국민의힘은 소위 제3 지대 ‘필패론’을 주장하며 거대 보수정당을 중심으로 정권교체를 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안 대표는 본인의 경쟁력을 앞세워 서울시장 선거를 이기고 야권 전체를 혁신해 정권을 교체하자는 것이다.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안 대표를 중심으로 단일화가 될 경우 후폭풍을 피할 수 없다. 당의 문을 열어야 하고 4월 새 지도부를 뽑는 전당대회에서 외부인사들이 당권 경쟁에 뛰어들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보수지지층이 이탈할 우려도 있다. 반대로 안 대표는 본인을 중심으로 야권단일화에 실패할 경우 정치생명이 위험할 정도의 타격을 입게 된다. 대권을 포기하고 돌아온 서울시장 선거마저 풀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야권이 단일화를 두고 싸움을 하다가 서울시장 선거의 분위기가 여권에 유리하게 바뀔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야권이 대안은커녕 구태를 버리지 못하고 권력투쟁에 몰입하는 모습으로 비칠 수 있어서다. 야권이 단일화에 실패하고 서로 비방을 일삼다가 선거를 내준 2018년 지방선거가 재현될 수 있다는 말이다. 2018년 서울시장 선거는 당시 박원순 전 시장이 52.79%를 득표해 김문수(23.34%), 안철수(19.55%) 후보를 가볍게 이기고 당선됐다. 야권 서울시장 후보 캠프의 한 관계자는 “단일화는 선거 직전까지 가봐야 알 수 있다”며 “민심(지지율)이 결국 모든 것을 해결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