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 26일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 장관은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북한의 핵 포기가 대화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당시 청와대 핵심 참모로 이 자리에 배석했던 인사의 회고에 따르면 당시 ‘전략적 인내’는 북한의 양보를 촉구하는 메시지 정도의 의미였다. 이후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도발이 거듭되면서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 압박 정책으로 굳어졌다는 것이다.
2009년 1월 취임한 오바마 대통령은 ‘핵 없는 세상’을 천명하면서 북한에 유화적 태도를 취했다. 그러나 북한은 2009년 4월 장거리 미사일 시험 발사에 이어 5월에는 2차 핵실험을 강행했고 미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1874호 대북 제재 결의로 대응했다. 그럼에도 미국과 북한은 고위급 회담을 통해 2012년에는 북한의 핵 활동 중단과 미국의 대북 식량 지원을 맞바꾸는 이른바 ‘2·29 합의’까지 도출해냈다. 하지만 또 북한은 4월 13일 장거리 미사일 ‘광명성 3호’를 발사했고 결국 인내심에 바닥을 드러낸 오바마 대통령은 이후 북한 핵 문제를 무시하는 정책 기조를 유지했다.
오바마의 전략적 인내에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 2013년 2월 3차, 2016년 1월 4차, 9월 5차 북한 핵실험을 막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략적 인내가 북한에 핵과 미사일 능력을 고도화하는 시간만 벌어주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심지어 2016년 몽골에서 열린 안보 콘퍼런스에 참석한 한 북한 외교관은 “전략적 인내 정책이 북한으로 하여금 핵 억지력을 기르게 했다”는 조롱 섞인 주장까지 내뱉었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이 최근 중국의 안보 위협을 강조하며 “일부 전략적 인내를 갖고 접근하고 싶다”고 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다시금 ‘전략적 인내’가 외교 화두로 떠오른 셈이다. 대북 정책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기조를 전면 재검토해 ‘새 전략’을 채택하겠다고 한다. 북핵 문제 해결에 중대한 관심을 두겠다는 미국이 동맹과의 긴밀한 협의를 요구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도 탈바꿈이 필요한 시점이다.
/문성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