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이중섭과 구상, 백석과 정현웅....미술과 문학이 만나니 눈물과 감동이 흐르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올해 첫 기획전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

1930~50년대 교류한 화가,문인 총출동

작품 140여점과 서지자료 200점 등 대규모

이중섭이 1955년에 그린 '시인 구상의 가족'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이중섭이 1955년에 그린 '시인 구상의 가족'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아빠가 가면 태현이와 태성이에게 자전거를 한 대씩 사줄게요.”



화가 이중섭(1916~1956)은 전쟁과 가난을 피해 일본의 처가로 간 아내와 아들들을 그리워하며 1954년 12월에 쓴 편지에 이같이 적었다. 그토록 사주고 싶던 자전거는 편지 속 그림으로 대신했다. 이듬해 1월 서울 미도파백화점화랑에서 연 개인전이 성공하면 자전거를 사 들고 가족을 만날 수 있을 줄 알았다. 은지화와 소 그림 등 걸작 50여 점을 선보인 전시는 주목을 받았지만 작품 값 수금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곧이어 열린 대구 전시의 성과도 좋지 않았다. 절망한 이중섭은 아내와 연락을 끊고 경북 왜관에 사는 친구이자 시인인 구상(1919~2004)에게로 갔다.

이중섭의 1955년작 ‘시인 구상의 가족’은 그 때 그려졌다. 아버지가 사 온 세발 자전거를 탄 아이는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를 정도로 즐겁고, 이를 바라보는 가족 모두 환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 이들 곁에 앉은 수염 난 사내가 이중섭이다. 자상한 눈길이지만 이내 눈물이 툭 떨어질 것만 같다. 이전의 강렬한 색채 대신 화폭을 가득 채운 누런 색감도 작가의 심정을 대변하는 듯하다.

김환기 등 지금은 거장이 된 당대 화가들의 작품이 표지로 사용된 문예지 '현대문학'이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의 기획전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에 출품, 전시중이다.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김환기 등 지금은 거장이 된 당대 화가들의 작품이 표지로 사용된 문예지 '현대문학'이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의 기획전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에 출품, 전시중이다.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격변의 시대였던 1930~50년대에는 문학과 미술이 ‘밀월관계’라 했을 정도로 긴밀했고 그 결과로 다양한 예술적 시도가 이어졌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새해 첫 기획전으로 덕수궁관에서 4일 개막하는 ‘미술과 문학이 만났을 때’는 이 시기 문예인들의 이야기를 작품 140여 점, 서지자료 200여 점 등으로 보여주는 대규모 기획전이다.

1938년 3월호 잡지 '여성'에 발표된 백석의 시에 정현웅이 삽화를 더했다.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1938년 3월호 잡지 '여성'에 발표된 백석의 시에 정현웅이 삽화를 더했다.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문예 잡지 ‘여성’의 1938년 3월호에 발표된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는 정현웅이 그립을 그려 넣었다. 눈이 푹푹 내려앉은 밤길을 걸어가는 흰 당나귀와 우두커니 앉은 나타샤의 모습이다. 두 사람은 1930년대 중반 같은 신문사에서 나란히 근무했다. 정현웅은 늘 바라보던 백석의 옆 얼굴을 그려 잡지 ‘문장’에 발표한 적 있고 백석은 만주 여행 중 지은 시 ‘북방에서’를 정현웅에게 헌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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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사랑으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울 이가 시심(詩心)의 화가 김환기다. 그는 김광균·서정주·김광섭·조병화 등 수많은 시인들과 교유했다. 시인 김광균이 소장했던 작품 ‘달밤’은 한국의 예술인들이 총집결했던 1951년의 피란지 부산에서 제작됐다. 시인 겸 사업가였던 김광균은 그의 부산 사무실 뒷벽에 그림을 걸어 두었다고 전한다. 넉넉하고 둥근 보름달과 달처럼 두둥실 뜬 바다 위의 배가 서정성의 극치를 보여준다.

김환기의 1951년작 '달밤'. 부산 피란지에서 김환기가 그린 작품을 시인 김광균이 오랫동안 소장했다.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김환기의 1951년작 '달밤'. 부산 피란지에서 김환기가 그린 작품을 시인 김광균이 오랫동안 소장했다.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화가이자 신문 삽화가로 활동한 박고석은 글 솜씨도 상당했다. 1958년작 ‘나무’는 간략하면서도 표현주의적 경향이 강렬하다. 박고석은 1958년 1월 4일자 한 신문에 이와 비슷한 그림과 함께 ‘고목이여 말하라’는 글을 발표했다. “타는 듯 붉고 환한 광채마냥 새해가 왔다. 사람들은 인공 위성이랑 현란한 것을 다 만드는데 여기 백 년은 더 묵은 고목이 있어 어제나 그제나 또 오늘도 그 늠름한 아름 드리와 더불어 크고 있다. 가지가지가 뻗어 하늘을 뚫을세라 사나운데 앙상한 가장귀 위에 홀가분한 까치집이 두 셋.”

전시장에서는 시인 정지용, 이상, 김기림, 김광균 등과 소설가 이태준, 박태원, 화가 구본웅, 김용준, 최재덕 등의 흔적도 만날 수 있다. 제1 전시실은 1930년대 시인 이상이 운영했던 경성 ‘제비다방’을 중심으로 한 예술가들의 네트워크, 2전시실은 신문과 잡지를 통한 문인과 미술인의 만남을 보여준다. 3전시실은 인물들의 각별한 관계를, 4전시실은 뛰어난 문학적 재능을 지녔던 화가들을 집중 조명했다. 5월30일까지.

박고석의 1958년작 '나무'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박고석의 1958년작 '나무'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조상인 기자 ccsi@sedaily.com


조상인 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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