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동향

개발지역도 모르는데 규제…'거래끊는 발상' 논란의 공급대책

개발 예정지 다주택자, 처분도 못하고 현금청산 기다릴 판

추첨제 노린 세대 분리 급증 땐 공급대책 '도루묵' 될 수도

희망하는 사업지만 허용…역세권 '띄엄띄엄 난개발' 우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4일 공급대책을 발표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4일 공급대책을 발표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이 동네가 공공 개발이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지만, 4일 공급 대책 발표 이후 ‘물딱지’를 파는 사람이 돼 집을 처분할 수조차 없게 됐습니다. 개발이 된다고 해도 추가 분담금을 낼 여력이 없는데 오도 가도 못하게 될까 봐 고민입니다.”(서울의 한 재개발 지역 주택 소유자 A 씨)

‘2·4 공급 대책’이 발표되면서 논란도 커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투기 억제 방안이다. 대책 발표일(4일) 이후 주택을 매입한 뒤 해당 지역이 추후 ‘공공 개발’ 구역으로 지정될 경우 아파트 입주권을 못 받고 ‘현금 청산자’가 된다. 매입 당시 개발 여부조차 몰랐는데도 말이다. 현금 청산은 감정평가로 이뤄져 시세보다 가격이 낮다. 양도소득세 등 세금 감면 혜택도 없다. 아파트를 산 사람도 문제지만 공공 개발 가능성이 있는 곳에 부동산을 보유한 소유자도 재산권 제약을 받는다. 지난 4일 이후 본인 주택을 팔기가 쉽지 않게 됐기 때문이다. 훗날 공공 개발 구역으로 지정될 수 있어서다.

공급 대책 투기 억제 방안에 대해 국토교통부는 위헌 여부를 검토했고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현성 법무법인 자연수 변호사는 “국민의 권리가 제한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예측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며 “재산권 침해의 기준이 되는 사업 구역에 대해 특정이 되지 않았고 범위가 지나치게 포괄적인 상황이다. 공익적 측면을 감안해도 위헌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이 같은 투기 억제 방안이 발표된 후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권의 재개발·재건축 구역의 부동산 매수 문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서울의 한 재개발 구역 공인중개사는 “대책 이후 우선공급권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매수 문의를 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어 ‘지금은 사지 마시라’고 얘기하고 있다”고 했다.



정부 발표 내용에 따르면 지금 당장은 정비 사업 진행 소식이 없는 주택이라도 4일 발표 시점 이후 매수 계약을 체결했다면 나중에 공공 직접 시행 정비 사업 등으로 추진될 경우 감정 평가에 따른 현금만 받고 수용되게 된다. 어느 지역이 사업 지역이 될지 모르는 상태라는 점에서 정비 사업 가능성이 있는 모든 지역에서 거래를 사실상 막는 조치나 마찬가지라는 해석이다. 권대중 명지대 교수는 “어디가 규제 대상인지도 모르고 전부 거래를 중단시킨다는 발상이 말이나 되나”라며 “위헌 소지가 다분하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개발 예정 지역에서 주택 여러 채를 보유한 다주택자들은 더욱 오도 가도 못하는 처지가 됐다. 만에 하나 해당 구역이 공공 방식을 택하게 되면 우선공급권은 1개밖에 받을 수 없다. 거래가 잠긴 상황에서 처분조차 못하고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현금 청산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저층주택 밀집지역인 서울 용산구 후암동 일대./오승현 기자저층주택 밀집지역인 서울 용산구 후암동 일대./오승현 기자


‘2·4 공급 대책’ 논란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청약 경쟁에서 밀린 3040세대를 위한 추첨제 도입도 또 다른 문제를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공공 분양 물량 중 85㎡ 이하의 30%를 추첨제로 공급할 계획이다. 대신 신청 자격은 3년 이상 무주택 자격을 유지한 무주택 세대원으로 한정됐다. 젊은 무주택 가구를 위한 공급 대책을 마련한 것은 좋지만 이 조건으로 인해 세대 수가 급격히 증가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유주택 세대의 성년 자녀가 청약 자격을 얻기 위해 ‘독립’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부모가 유주택자인 경우 같이 사는 자녀는 ‘유주택 세대원’으로 이번 대책으로 나올 추첨제 물량에 청약할 자격이 없다. 대신 이들이 세대 분리를 하면 ‘무주택 세대주’가 돼 3년간 무주택 자격을 유지할 시 청약 자격을 얻을 수 있다. 공공 분양 청약을 노리고 독립하는 젊은 세대가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인데, 결국 공급을 늘린 만큼 수요층이 더 많이 늘어나는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얘기다.

세대수 증가에 따른 임대차 수요가 늘면서 전월세 시장의 불안을 더욱 가속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가뜩이나 이번 대책에 전월세 대책은 포함되지 않아 시장 안정에 대한 우려가 높은 상황인데 가수요 증가로 기존 세입자들의 불안은 더욱 높아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장재현 리얼투데이 본부장은 “이번 추첨제 물량 부활로 청약에 관심을 가지는 2030세대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며 “이들로 인해 전월세 수요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역세권 난개발 우려도 나오고 있다. 공공 고밀 개발은 희망 사업지에 대해 이뤄진다. 즉 같은 역세권에서도 공공 고밀 개발을 원하는 곳이 있고, 그렇지 않은 곳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렇다 보니 ‘띄엄띄엄 고밀 난개발’이 우려된다는 지적마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진동영 기자 jin@sedaily.com


진동영 기자 jin@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