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년간 공정한 시장경제를 향한 큰 진전이 있었다. 소액주주 권한은 강화됐으며 기술 유용이나 단가 후려치기를 막기 위해 제재도 높였다. 이제 우리는 또 다른 숙제를 해야 한다. 기업들이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펼치게 만드는 것이다. 기업들이 뛸 수 있도록 만드는 과제는 정치권이 해야 할 일이다.
그동안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겠다는 공약은 많았지만 성공한 적은 거의 없었다. 정치적 득실을 따지다 보니 주춤했기 때문이다. 국가 경제를 책임지는 여당은 균형 감각이 필요하다. 공정을 위한 채찍과 경영을 촉진할 당근을 함께 갖춰야 한다. 기업가가 안심하고 경영할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세 가지 원칙이 필요하다.
첫째, 기업이 안정적으로 경영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자. 경영자들은 투기 자본이 경영을 흔들 수 있는 상황을 불안해한다. 엄살이 아니라 실재하는 위험이다. 안정 경영은 경영자가 아닌 투자와 고용을 지키는 일이다. 부도덕과 독선 경영으로 회사를 망치는 경영자를 엄벌할 수단은 이미 있다. 투기 자본의 창궐로 투자와 고용이 위축됐다는 반성이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에서 계속 나오는 것을 간과하면 안 된다. 포이즌 필, 차등의결권을 허용해도 외국인 주주들의 승인이 필요해 실제로 활용하기는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특히 EU가 장기 주식 보유 주주에 대한 인센티브로 복수의결권을 허용하는 방안을 논의하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투기 자본에 대한 직접적 규제도 필요하다. 금융 기법을 활용한 편법적 지분 확보를 차단하고 이사 후보를 제안해 선임까지 성공한 주주에게는 지분율과 상관 없이 단기 매매 차익 반환 의무를 부여하는 것도 방법이다.
둘째, 기업가를 위축시키는 과잉 처벌 조항들도 바꿔야 한다. 경제 관련 법률의 형사처벌 항목 중 2,000여 개에 달하는 항목이 최고경영자를 회사와 같이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 받는다”는 기업가의 자조는 틀린 말은 아니다. 기업가들을 봐주자는 게 아니다. 직원 실수로 인한 공시 누락을 형사처벌하고 신규 화학물질 등록을 안 했다고 파렴치한으로 만드는 것은 과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필자는 민관과 국회가 함께 경영자 처벌 조항 합리화를 논의하는 ‘기업인 기 살리기 프로젝트’ 추진을 건의한 바 있다. 과잉 처벌은 조정하고 인신 구속형은 과징금과 과태료 등 경제적 제재로 바꾸는 것을 제안한다. 위법으로 인한 피해를 성심껏 시정하고 피해 복구에 노력하면 사건을 종결하는 공정거래법상의 동의 의결 제도를 활성화하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다.
셋째, 조세 정책도 손봐야 한다. 조세는 사회정책이자 경제정책이다. 법인세가 대표적이다. 많은 나라들은 기업 투자 촉진을 위해 법인세를 내리고 있는 추세다. 지난 10년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0개국의 법인세는 평균 1.9%포인트가 낮아졌지만 한국은 같은 기간 3.3%포인트 올랐다. 현실적으로 세수 때문에 법인세를 낮추기는 어렵지만 연구개발(R&D) 등에 대한 세제 지원은 가능할 것이다. 지금은 미중 기술 패권 전쟁 시대다. 이 다툼에서 살아남으려면 기술에 명운을 걸어야 한다. R&D 세액 공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구분 없이 늘려야 한다.
아울러 상속세도 논의해야 한다. “가업 승계를 두 번 하면 상속세 때문에 회사를 포기해야 한다”는 기업인의 토로는 엄연한 현실이다. 복지국가 스웨덴이 왜 상속세를 폐지했는지, 우리만큼 상속세율이 높았던 대만이 왜 세율을 대폭 낮췄는지 살펴보자. 과정의 도덕적 해이와 위법은 혹독하게 처벌해야 하겠으나 세율이 징벌적일 필요는 없다.
/박진용 기자 yong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