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실에서는 정월 초하루 궁궐 정문에 그림을 붙였다. 나쁜 기운을 물리치고 복을 갈구하는 ‘문배(門排)’의 풍속이다. 문배도 그림 제작은 도화서에서 담당했고, 조선 후기 이후에는 이 풍속이 민간으로도 퍼져 나갔다. ‘문배’에 관한 기록은 조선 시대의 문헌 자료인 ‘열양세시기’와 ‘동국세시기’, 조선 후기 행정법규를 정리한 ‘육전조례’에도 전한다.
그렇다면 신년 벽두 궁궐 정문에 붙인 문배도는 어떤 그림이었을까? 도상의 실체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남아 전하는 게 없었다. 그러던 중 지난 2015년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미국 워싱턴DC에 위치한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을 복원·재현하는 과정에서 미국 의회도서관이 소장한 경복궁 광화문 사진을 발굴했다. 19세기 말의 이 사진은 경복궁 광화문에 금빛 갑옷을 입은 ‘금갑장군’이 그려진 문배도가 붙어 있었음을 확인시켰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경복궁관리소가 설 연휴기간인 오는 11일부터 14일까지 경복궁 광화문에 금갑장군이 그려진 문배도를 부착한다고 8일 밝혔다. 문화재청 측 관계자는 “이번 광화문 ‘문배도’ 부착은 연초 액과 나쁜 기운을 쫓는다는 조선 시대 세시풍속에서 착안해 코로나19로 지친 국민의 마음을 위로하고자 기획됐다”고 말했다.
미국 의회도서관 소장의 19세기 말 경복궁 광화문 사진에는 ‘문배도’가 확인되나 일부 훼손돼 부분적으로만 전하고 있어 재현이 어려웠다. 이에 문화재청은 자문회의를 거쳐 도상과 의장기물의 표현에서 왕실과의 연계성이 보이며, 유일하게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는 안동 풍산류씨 하회마을 화경당 본가 소장 유물을 바탕으로 제작했다.
원래 광화문의 문배도는 종이에 그려 문에 직접 부착하는 방식이었으나, 탈·부착 때의 광화문 훼손을 우려해 문화재청은 현수막의 형태로 설치할 예정이다. 문화재청 측은 “설날 연휴인 11일부터 14일까지 부착할 계획이며, 야간에도 조명을 비추어 광화문의 모습을 다채롭게 할 예정”이라며 “추후 광화문 문배도에 대한 도상의 원형 복원을 위해 추가적인 고증 연구를 시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조상인 기자 ccsi@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