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피플

'현 가치 2조원' 전재산 항일에 바친 이석영 선생, 87년 지나서야 장례 치른다

남양주 '이석영뉴미디어도서관'서

보유한 땅 팔아 신흥무관학교 설립

청산리대첩 등 독립전쟁 초석 마련

일제, 가족 몰살…선생 빈곤 시달려

경기 남양주시 화도읍 이석영뉴미디어도서관 1층 로비에 있는 이석영 선생 흉상. /사진 제공=남양주시경기 남양주시 화도읍 이석영뉴미디어도서관 1층 로비에 있는 이석영 선생 흉상. /사진 제공=남양주시




이석영 선생이석영 선생


항일 무장투쟁의 요람인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는 데 전 재산을 바친 독립운동가 이석영(사진) 선생의 장례식이 순국 87년 만에 열린다.



이석영 선생은 지난 1934년 중국에서 순국했으나 직계 후손이 없어 그동안 장례를 치르지 못했다. 상하이 공동묘지에 안장됐으나 도시 개발로 유해도 사라졌다.

남양주시는 오는 16일 화도읍에서 최근 문을 연 이석영뉴미디어도서관에서 영석(潁石) 이석영 선생 순국 87주기 추모식 겸 장례식을 개최한다고 9일 밝혔다.



방계 후손인 이종찬 추모식 추진위원장은 “이석영 선생은 직계 후손이 없어 장례를 치르지 못한 채 잊혔는데 87년 만에 첫 추모식이자 장례식을 치르게 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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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영 선생은 백사 이항복의 11대손으로 우당 이회영 선생과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을 지낸 성재 이시영의 둘째 형이다.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자 이석영 선생 등 여섯 형제가 결의해 1910년 12월 가족을 이끌고 만주로 떠나면서 화도읍 일대 땅을 모두 팔아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고 독립군 간부를 양성하는 등 전 재산을 독립운동에 바쳤다.당시 땅을 판 돈을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2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은 해방될 때까지 광복군의 주축이면서 청산리대첩 등 독립 전쟁을 이끌었다. 하지만 1918년 일제의 지명수배로 이석영 선생은 선양·베이징·톈진·상하이 등으로 피신하며 빈곤하게 생활했고 그의 가족들은 1927년 일제에 몰살당했다.

이석영 선생은 1934년 2월 16일 상하이에서 80세의 나이로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으며 공동묘지에 안장됐다. 1991년에서야 건국훈장을 받았다. 네 번째 등급인 '애국장'에 추서됐다. 지난해에는 정부가 '8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기도 했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은 “조선 시대 ‘금수저’ 사대부들은 국가가 기울어질 때 나서는 이가 드물었지만 이석영 선생 여섯 형제는 전 재산과 목숨을 항일운동에 바쳤다”고 추모했다.

장례식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막고자 간소하게 진행되며 유튜브 ‘이석영뉴미디어도서관’을 통해 중계된다.

/박현욱 기자 hwpark@sedaily.com


박현욱 기자 hw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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