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아침에]되살아 나는 '양털깎기'의 망령

가계·기업·국가부채 100%대 심각

美 금리인상 시작땐 빚잔치 본격화

기업 헐값매각·실업자 폭증할수도

선심경쟁→외환위기 재연 경계를





빚과 술은 공통점이 있다. 적절하게 지키면 기분이 좋지만 지나치면 자신을 잡아먹는다는 것이다. 가계나 기업은 물론 국가도 빚의 늪에 빠지면 엄청난 고통을 피할 수 없다. 가족 간에 갈등이 생기거나 이혼으로 이어지고 야반도주 사태가 벌어지기도 한다. 국가가 소중한 문화유산과 섬 등 국토를 무더기로 시장에 내놓은 사태도 지켜봤다. 문제는 빚이 사회 전체적인 현상이 돼 경제 위기로 이어지는 경우다. 빚의 경제학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빚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인지와 자산 인플레가 얼마나 심각하느냐다. 인플레가 심해지면 과열을 막기 위해 금리 인상이 불가피해지고 금리가 오르면 채무가 눈덩이로 불어나면서 빚잔치가 시작됐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지금 두 측면 모두에 빨간불이 켜졌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현재 한국의 가계와 기업의 부채가 각각 2,000조 원, 국가 부채는 800조~1,000조 원으로 총액이 무려 5,000조 원에 달한다. 지난 2020년 국내총생산(GDP) 예상치인 1,764조 원의 세 배에 가깝다. 우리 국민이 한 해 번 돈의 세 배가량이나 빚을 떠안고 있다는 얘기다. 초저금리를 배경으로 주택 가격이 폭등하면서 GDP 대비 가계부채비율은 지난해 3분기 101.1%로 처음 100%를 넘어섰다. 미국(81.2%)과 주요 선진국(78.0%)에 비해 훨씬 높다. 1980년대 후반 일본에서 부동산 광풍이 분 후 주택 가격이 1991년부터 15년 내리 하락해 반 토막이 난 점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기업부채비율도 2019년 3분기에 100%를 넘어선 후 지난해 3분기 110.1%에 달했다. 미국의 경우 GDP 대비 기업부채비율이 1990년대 이후 40~50%대 사이에서 움직여왔던 점을 감안하면 예사롭지 않다. 그런데 이자도 제대로 못 내는 좀비 기업(한계 기업)의 비중은 2019년 기준 17.9%로 일본(1.9%)에 비해 16%포인트나 높다. 부실기업이 널려있어도 구조 조정이 안 돼 돈이 흘러가야 할 곳에 가지 못하는 동맥경화에 걸려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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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와 기업의 재정이 부실하면 국가 재정이라도 튼튼해야 위기가 닥칠 경우 극복할 수 있다. 외환 위기 때도 국가 재정이 기업과 은행의 부실을 떠안을 수 있어서 빠른 시간 내에 회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들어 퍼 주기가 봇물 터지듯 터지면서 출범 때 660조 원에 달했던 국가 부채가 올해 1,000조 원을 넘어설 조짐을 보인다. 여권에서는 한국 국가부채(D1)가 GDP 대비 40% 선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평균인 109%에 크게 미달하는 만큼 재정을 더 풀어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 OECD 국가들은 대체로 공기업을 포함한 D3, 정부가 지급보증한 공무원·군인 연금 부문을 포함한 D4 부채가 많지 않아 중앙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부문만 포함하는 D1 지표를 쓴다. D4까지 감안한 한국의 실제 국가 부채 비율은 자그마치 106%에 이른다는 얘기다. 게다가 세수는 인구가 지난해 감소세로 전환하면서 악화일로다. 반면 복지 비용은 고령화의 가속으로 향후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우려된다. 고령화로 사학·국민연금의 고갈 시기가 당겨지고 있는데도 연금 개혁은 방치돼 있다. 이마저 정부가 보증 서고 통일도 대비해야 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전 세계에 풀린 천문학적인 유동성으로 자산 인플레가 고공 행진을 하고 있다. 인플레에 대한 우려로 지난해 3월께 1.0%에 머물렀던 미국 국채 30년물의 수익률(금리)이 올 들어 2% 선을 넘어섰다. 미국에서 금리 인상이 시작된다면 지구촌 빚잔치도 본격화할 수 있다. 동남아시아의 외환 위기도 미국발 금리 인상에서 비롯됐다. 양털이 풍성하게 자랐을 때 단번에 깎이듯이 알짜 기업·자산들이 헐값에 팔 수밖에 없는 ‘양털 깎기’의 계절이 도래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데도 여권은 경기 부양 효과도 별로 없는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을 강행할 태세다. 오는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위한 표(票) 몰이용이다. 서울시장 후보들도 선심 경쟁에 뛰어들었고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자영업자에 대한 소급 보상까지 주장하고 있다. 나라가 수렁으로 빠지고 있는데도 선거판만 쳐다보고 있다.

/오현환 논설위원 hhoh@sedaily.com


오현환 논설위원 hho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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