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말 네덜란드 상인들은 주로 포르투갈에서 향료 등 동양의 산물을 수입했다. 가격이 치솟자 이들은 직접 동양과 해상무역을 하는 길을 찾았다. 이에 따라 1596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인 동인도회사가 탄생했다. 이어 1602년 암스테르담에 세계 최초의 증권거래소도 설립됐다.
자본주의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주식회사·증권시장·중앙은행이 네덜란드에서 가장 먼저 생긴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종교의 자유를 찾아 유럽 전역에서 몰려든 사람들이 가톨릭 국가인 스페인을 상대로 80여 년에 걸쳐 독립전쟁을 벌이면서 쟁취한 자유가 바탕이 됐다. 명예혁명으로 네덜란드 총독이었던 윌리엄 3세와 부인 메리 2세가 영국의 왕위를 계승하자 발전된 네덜란드의 금융 시스템이 영국에 이식됐다. 왕을 따라간 3만여 이주자들이 금융 기법, 조선술 등을 전파해 대영제국 번영의 초석을 다졌다. 잉글랜드 은행도 1609년에 네덜란드 독립전쟁을 위해 설립한 암스테르담 은행을 모방한 것이다. 1630년대 과열 투기로 거품 경제 현상을 빚은 ‘튤립 파동’도 네덜란드에서 벌어졌다.
암스테르담이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한 달 만에 런던을 밀어내고 유럽 최대의 주식 거래 중심지로 부상했다. 지난달 하루 평균 주식 거래량이 92억 유로(약 12조 3,500억 원)어치로 86억 유로(약 11조 5,400억 원)의 런던을 추월했다. 유럽연합(EU)이 유로화 표시 주식·채권을 EU 내에서 거래해야 한다고 결정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EU 금융 기업들이 유럽 최대 증권거래소 운영 업체인 유로넥스트의 운영본부가 있는 암스테르담 증권거래소에서 많이 거래했다. 18세기에 런던에 넘겨준 ‘유럽 최고 금융 도시’라는 타이틀을 되찾은 셈이다. 유로넥스트는 2000년 암스테르담과 브뤼셀·파리에 있는 증권거래소가 병합해 만들어졌다. 경제는 네덜란드처럼 자유와 창의, 규제 완화를 기반으로 성장한다. 영국이 국민투표로 브렉시트를 결정한 뒤 벌어지는 런던 금융시장의 굴욕을 보면서 지도자와 국민들의 판단이 국운을 좌우할 수 있다는 점을 새삼 느끼게 된다.
/오현환 논설위원
/오현환 논설위원 hhoh@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