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력원자력은 지난달 신한울 원전 3·4호기 공사 계획 인가를 받을 수 있는 기간을 2년 연장해달라고 산업통상자원부에 요청했다. 한수원은 지난 2017년 2월 신한울 3·4호기의 발전 사업 허가를 받았으나 사업 착수에 추가로 필요한 공사 계획 인가를 못 받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2017년 10월 탈원전 로드맵을 발표하면서 생긴 일이다.
발전 사업 허가를 취득한 뒤 4년째인 이달까지 공사 계획 인가를 못 받으면 사업 허가마저 취소돼 사실상 신한울 3·4호기 건설은 백지화된다. 이 경우 한수원은 주기기를 사전에 주문 요청했던 두산중공업 및 중소 기자재 업체들과 대규모 손해배상 소송을 치러야 해 일단 사업 연장을 신청한 것이다.
한수원의 연장 신청서를 받아본 산업부의 속내는 복잡하다. 앞서 문재인 정부가 신규 원전 건설을 백지화한 탈원전 정책을 확정한 터라 공사 계획 인가를 내주고 사업 착수의 길을 틔워주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산업부에 남은 선택지는 발전 사업 허가를 취소하거나, 공사 계획 인가를 받을 수 있는 기한이라도 늘려주는 것이다.
그런데 발전 사업 허가를 취소했다가는 손해배상 청구에 직면할까 두렵다. 기자재 업체가 한수원에 내민 청구서를, 한수원은 다시 산업부에 넘길 것이 명약관화하다. 이 때문에 산업부 내에서는 임시방편으로 ‘사업 허가 연장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신한울 3·4호기 존폐 여부를 실무자들이 ‘우리 손으로 결정짓지는 않겠다’는 속셈이다.
산업부와 한수원은 “월성 원전 1호기는 언제 멈추느냐”는 윗선의 지시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인 바 있다. 월성 원전 조기 폐쇄에 총대를 멨던 실무자들은 윗선이 팔짱 끼며 책임을 미루는 사이 교도소 담장 위를 걷고 있다. “시키는 대로 했다가 문제가 생기면 책임은 우리 몫”임을 절감한 공무원들은 윗선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책임은 피할 ‘묘수’를 만들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실무자까지 미봉책에만 골몰해 폭탄 돌리기를 하면 그 피해는 힘 없는 중소 납품 업체들이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신한울 3·4호기 건설 허가가 아예 취소되면 손해배상 등 법적 대응이라도 할텐데 인가 기한만 연장하는 꼼수는 이들 업체의 마지막 호소마저 막겠다는 입막음이다.
/세종=김우보 기자 ub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