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자국 내 핵 사찰을 3개월 연장하기로 했다. 여기에 이란에 억류된 미국인 5명을 석방하기 위한 양측의 대화가 시작된 것으로 알려지며 핵 합의 복원에 대한 국제사회의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21일(현지 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은 지난주 말 이란을 방문한 후 오스트리아 빈 공항으로 돌아와 “이란이 IAEA 추가의정서 이행을 중단하더라도 3개월간 필요한 사찰과 검증 작업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취재진에게 말했다. 다만 그는 이전과 비교해 핵 시설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란에 억류된 미국인 5명에 대한 양측의 논의도 시작됐다.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날 CBS와의 인터뷰에서 “이 문제에 대해 이란과 소통하기 시작했다”면서 “이들을 안전하게 집에 돌려보내는 것은 행정부의 중요 우선순위 과제”라고 밝혔다.
이란의 잇따른 유화 신호로 이란 핵을 둘러싼 국제사회의 긴장은 조금씩 누그러지는 분위기다.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이 이날도 “미국이 모든 제재를 철회하기 전에는 핵 합의에 복귀할 수 없을 것”이라며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지만 전문가들은 이를 대화 테이블에 앉기 전 협상력을 높이려는 움직임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이란이 결국 대화에 복귀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에는 미국의 대(對)이란 경제 제재가 있다. 지난 2018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핵 합의를 파기하며 이란의 원유 수출 금지 및 미국 금융 네트워크에서의 이란 퇴출 등 제재를 복원했고 그 여파로 이란의 연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2018~2019년 모두 -6%대에 머물렀다. 미국의 제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확보에도 영향을 미쳤다. 미국의 제재로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한 제약사들이 이란과의 거래를 꺼려해 백신을 빨리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은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이란 보건부 측은 코백스를 통한 백신 확보에 나섰지만 미국의 제재로 지연되고 있다고 불평한 바 있다.
미국도 이란에 대화 신호를 보내고 있다. 18일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이란이 핵 합의에 응할 경우 미국도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하며 “이란과 이러한 목적을 위한 논의에 참여할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외교 전문 매체 포린폴리시(FP)는 미국이 일단 이란과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라며 이란이 먼저 행동을 취하라는 강경한 입장에서 한 발짝 물러섰다고 분석했다. 미국은 유럽의 신뢰를 빠르게 얻기 위해서, 또한 오는 6월 치러질 이란 대통령 선거 이후 강경파가 들어서기 전에 핵 합의를 복원하는 것이 좋다는 계산을 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이란을 향한 제재를 풀며 더 강력한 대화 신호를 보낼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미국이 △이란의 원유 수출 재개 △국제통화기금(IMF)을 통한 이란 지원 △동결 자금 부분 해제 카드 중 하나를 쓸 수 있다고 내다봤다. 특히 ‘원유 수출 재개’ 선택지가 높게 점쳐진다. 이란이 제재 속에서도 정식 통로를 우회해 원유 수출을 계속해 어차피 제재 효과가 크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이란이 다음 달 감산에 동참하는 산유국들이 모이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공동각료감시위원회(JMMC)에 참석할 예정이라고 이날 블룸버그통신이 보도해 이란의 원유 수출 재개가 임박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문제는 시점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1조 9,000억 달러(약 2,100조 원) 규모의 대규모 경기 부양책 통과를 위해 공화당과의 마찰을 피하고 있다. FP는 바이든 대통령은 이란 제재를 완화할 경우 공화당이 ‘미국이 이란에 일방적으로 양보했다’고 반발할 수 있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며 대통령의 정치술이 시험대에 올랐다고 전했다.
/곽윤아 기자 ori@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