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의창만필] '무심한 남편' 딱지 떼기

이수찬 힘찬병원 대표원장

폐경 맞은 아내 관절염 취약한데

코로나 집콕 탓 삼시 세끼·빨래 등

이중 삼중 노동의 굴레 벗기 힘들어

가족 위해 희생하는 마음 헤아리길

이수찬 힘찬병원 대표원장이수찬 힘찬병원 대표원장




아내가 50대에 접어들면서 무릎이 아프고 어깨도 결린다며 하소연하기 시작했다. 남편이 정형외과 전문의니 아프다고 하면 좋은 해결책을 알려줄 것으로 기대했을 텐데 필자는 “나이 들면 다 그런 것이니 집에서 찜질이나 하라”고 말했다. 실망한 아내는 벌써 몇십 년이 지난 옛날 일까지 들먹이며 서운해했다. “당신은 늘 그런 식이에요. 둘째 어렸을 때도 나 몰라라 해서 고생을 시키더니 또 그러기에요.”



아내가 각을 세워 섭섭함을 토로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둘째 아들이 일곱 살이었을 때 일이다. 당시 바퀴 달린 신발이 유행이었는데 둘째 아들이 그 신발을 신고 다니다가 넘어져 손목을 다쳤다. 나는 아이에게 “오늘 푹 쉬면 내일은 괜찮을 거야”라고 말하고 넘어갔다.

하지만 다음날이 돼도 아들의 손목은 좋아지지 않았다. 보다 못한 아내가 당시 내가 근무하던 병원에 아들을 데리고 와 다른 동료 의사에게 진료를 받게 했다. X레이를 찍어보니 손목뼈가 부러져 뼈를 맞추고 석고로 깁스를 한 후 집으로 돌아갔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는 정말 너무 바빴다. 낮에 아내와 아들이 병원에 와서 치료를 받고 갔는데도 모르고 있다가 밤늦게 퇴근하고 나서야 자초지종을 들었다. 그날부터 지금까지 아내와 둘째 아들은 나에게 서운함을 느낄 때마다 그때 일을 무기 삼아 공격한다. 사골처럼 벌써 몇 십 년을 우려먹는데도 할 말이 없다. 아무리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는다지만 아들 손목이 부러진 것을 살피지 못한 것은 내 불찰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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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일은 변명의 여지가 없지만 아내에게 “찜질이나 하라”고 말한 것은 말투는 퉁명스러워도 내 나름의 처방이었다. 나이가 들면 누구나 관절이 약해진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관절이 더 많이 아프다. 무릎 관절염으로 수술을 받는 환자 10명 중 8명은 여성일 정도로 남성보다 여성들이 관절염으로 고생을 많이 한다. 아내 나이가 50대 중반에 접어들었으니 관절이 약해져 많이 쓰면 아픈 것이 당연했다. 관절이 너무 닳아 뼈와 뼈가 부딪친다든가 관절을 지탱해주는 인대나 힘줄이 손상돼 아픈 것이 아니라면 찜질로 통증을 완화할 수 있다.

중년 여성들이 관절염에 취약한 이유는 폐경과 관련이 있다. 폐경 전에는 남성과 여성이 큰 차이가 없다. 폐경 후 뼈와 근육을 튼튼하게 하는 여성호르몬이 급격히 줄면서 관절이 치명타를 입는다. 관절이 약해지고 뼈에서 칼슘이 빠져나가 골밀도가 낮아져 관절염이 생길 위험이 커진다. 또 여성호르몬은 지방을 분해하는 역할도 하기 때문에 폐경 이후 여성들은 살이 찌기 쉽다. 체중이 1㎏ 늘면 무릎에 실리는 하중은 3~5배 늘어난다. 결국 중년 여성들은 이중 삼중으로 관절염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자세 역시 관절을 아프게 하는 주범이다. 여성들은 주로 쪼그려 앉아 집안일을 많이 한다. 걸레질하거나 재료를 다듬으면서 쪼그릴 때가 많다. 이런 자세는 무릎에 상당한 무리를 준다. 무릎을 130도 이상 구부려 쪼그려 앉았을 때 무릎이 받는 하중은 몸무게의 일곱 배에 달한다.

특히 명절이 지나면 주부들의 무릎은 남아나지를 않는다. 지난 설은 고향을 찾지 않고 집에서 보낸 분들이 많았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삼시 세끼에 빨래·설거지·청소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오죽하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대에 길어지는 ‘집콕’ 탓에 ‘바쁜 여성 증후군’이라는 말이 다시 조명을 받고 있으랴.

맞벌이하는 아내도 예외는 아니다. 가족끼리 소박하게 설을 지냈는데도 한동안 여기저기 관절이 아파 고생했다. 준비할 때는 가족들 먹일 생각에 힘든 줄도 모르고 바쁘게 움직이다 명절이 지나 긴장이 풀리자 한꺼번에 관절들이 비명을 질러댄 것이다.

관절이 안 좋은데도 가족들을 위해 열심히 움직인 아내에게 감사하면서도 여전히 아내의 노고를 알아주고 마음을 표현하는 데 서툰 나를 다시 되돌아보게 된다. 마음 같아서는 고생한 아내를 위해 따뜻한 찜질이라도 해주고 싶지만 갑자기 하려니 낯이 간지럽다. 언제쯤 ‘무심한 남편’ 딱지를 뗄 수 있을는지.

/여론독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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