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IT

"개발자로 쓸만하면 이직"...중소IT '환승센터' 전락하나

[인력전쟁 과열...중소·스타트업 고사위기]

前 직장 연봉 2배 인센티브 등

몸값 천정부지에 '뜀뛰기' 가속

IT업계 근속연수 더 짧아질 듯

인건비 대려 R&D 비용 줄이면

결국 장기 성장 위협 요인으로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이미지투데이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이미지투데이




“저희 같은 애매한 위치의 회사들은 정보통신기술(ICT) 인력들이 거쳐가는 ‘정류장’으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고 서로 자조하기도 합니다. 1~2년 버티면서 경력을 쌓아서 연봉을 훨씬 많이 주는 회사로 옮겨가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사내 문화나 분위기를 쇄신하려고 노력하지만 결국 돈 앞에는 장사가 없습니다.” (중견 ICT기업 관계자)



최근 며칠 간격으로 발표된 ICT 업계의 릴레이 연봉 인상 소식에 ICT 기업들이 몰려 있는 판교테크노밸리의 희비가 엇갈렸다. 대형 ICT 기업들이 임직원 연봉을 800만 원에서 최대 2,000만 원 수준까지 한꺼번에 인상하겠다고 밝히면서 하룻밤 사이에 기업들의 연봉 순위가 바뀌어버렸다. 기업 규모가 큰 엔씨소프트·네이버 등은 위기감을 느끼는 수준이지만 중견·중소·스타트업 관계자들은 생존을 걱정할 만큼 분위기가 심각하다.

왼편에는 NHN, 오른편에는 넥슨 사옥이 보이는 경기 성남 판교테크노밸리의 거리에서 점심을 맞아 밖으로 나온 직장인들이 산책을 하고 있다. /성남=권욱 기자왼편에는 NHN, 오른편에는 넥슨 사옥이 보이는 경기 성남 판교테크노밸리의 거리에서 점심을 맞아 밖으로 나온 직장인들이 산책을 하고 있다. /성남=권욱 기자



스타트업·중소·중견 ICT 업계가 당장 걱정하는 사태는 필수 인력들의 이탈이다. ICT 업계에서는 대학 졸업 이후 대형 스타트업이나 소규모 IT기업에서 시작해 중견 기업을 거쳐 게임사나 네이버·카카오 등 대형 ICT 관련 회사로 점차 몸값을 높여 이직하는 경우가 많다. 대형 ICT 기업에 입사한 후에는 삼성전자나 외국계 기업으로 다시 한번 이직하는 것이 공식처럼 여겨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대형 ICT 기업들이 파격적으로 연봉을 높임에 따라 기업 간 격차가 더 벌어진 만큼 ‘연봉 뜀뛰기’를 하는 주기도 짧아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최근 연봉을 인상한 일부 기업이 다른 회사의 경력자들에게 적극적인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더 높은 연봉은 물론 스톡옵션 등 추가 인센티브까지 내세워 경력 개발 인력을 끌어 모으고 있다. 중견 ICT 기업의 한 관계자는 “몸값을 높이고 유명한 회사에서 일하고 싶은 경력자들에게 이런 제안은 분명히 매력적”이라며 “과거에는 함께 동고동락하며 미래를 꿈꾸는 기업들이 많았지만 요즘은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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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중소 ICT기업 관계자는 “아무리 사내 문화를 개선하고 평등한 의사 결정 시스템을 갖춰도 높은 연봉을 당해내기 어렵다”며 “중소·중견 ICT 기업에서 열심히 일하는 인력들도 상대적 박탈감과 패배 의식에 젖어 있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지난달 26일 개발 직군은 2,000만 원, 비개발 직군은 1,000만 원 연봉 인상을 발표한 직방이 경력 직원을 모집하는 공고를 띄우고 있다. 직방은 경력직의 경우 전 직장 연봉 1년치를 사이닝 보너스로 지급하기로 했다. /사진 제공=직방지난달 26일 개발 직군은 2,000만 원, 비개발 직군은 1,000만 원 연봉 인상을 발표한 직방이 경력 직원을 모집하는 공고를 띄우고 있다. 직방은 경력직의 경우 전 직장 연봉 1년치를 사이닝 보너스로 지급하기로 했다. /사진 제공=직방


중견·중소·스타트업들은 인재 유치는 커녕 인재 유지를 위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연봉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 잇달아 연봉을 인상했거나 인상할 예정인 ‘3N(엔씨소프트·넥슨·넷마블)’의 경우 최근 3년 간 실적이 꾸준히 상승해 매출 대비 인건비 비중을 매년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하거나 오히려 줄여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중견·중소·스타트업의 상황은 다르다. 최근 연봉 인상을 발표한 컴투스의 경우 매출 대비 인건비 비중이 지난 2018년 11.27%에서 2019년 13.89%, 2020년 15.80%로 꾸준히 늘고 있다. 컴투스의 모회사인 게임빌은 지난해 2016년 이후 처음으로 흑자 전환에 성공하자마자 컴투스와 함께 임직원 연봉을 800만 원씩 올렸다. 게임 업계의 한 관계자는 “게임사는 주요 게임 출시 일정에 따라 실적이 크게 오르고 추가 ‘파이프라인’이 없는 상황에서는 다음 신작 출시까지 실적이 악화되는 게 일반적”이라며 “한 번 연봉을 올렸다가 이후 매출 동력이 없어지는 경우 최악의 상황이 될 수 있어 고민이 크다”고 전했다. 또 다른 중소 ICT 업계 관계자는 “규모가 작거나 적자에 허덕이는 기업들은 당장 인건비를 올리는 것 자체가 큰 부담”이라며 “모든 자원을 총동원해 인건비를 올렸다고 하더라도 실적이 악화하면 고정비인 인건비를 줄이기는 힘들다 보니 결국 수익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계기로 급성장하고 있는 국내 ICT 산업이 ‘몸값 인플레’ 탓에 꾸준한 성장 엔진 발굴에 실패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인재 경쟁력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할 수밖에 없어 새로운 스타 기업이 꾸준히 탄생하는 생태계가 조성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위정현 중앙대 교수 겸 한국게임학회장은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이동하려는 움직임이 빨라지면서 이어 중견 회사들도 인재를 뻬앗기지 않기 위해 연봉을 올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연봉 인상 트렌드는 중견·중소·스타트업들에 지적재산권(IP) 투자, 주 52시간 근로제, 마케팅 비용 증가와 맞물려 새로운 도전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혜진 기자 madein@sedaily.com, 윤민혁 기자 beherenow@sedaily.com


정혜진 기자 madein@sedaily.com·윤민혁 기자 behereno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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