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52년 대만의 장제스 총통이 대만해협에 위치한 최전방 요충지 진먼섬(金門島)을 찾아 주요 군사 시설을 둘러보고 ‘무망재거(毋忘在?)’라는 휘호를 남겼다. 이는 전국시대 연나라의 공격으로 궁지에 몰렸던 제나라가 유일하게 남은 ‘거성(?城)’을 기반으로 힘을 길러 국토를 회복했듯이 권토중래의 정신으로 통일을 실현하자는 염원을 담은 것이다. 지금도 진먼섬에서 가장 높은 타이우산의 암벽에는 ‘무망재거’라는 붉은 색의 글자가 큼지막하게 새겨져 있다.
대만해협은 중국 대륙과 대만 사이에 있는 바다로 길이 400㎞, 폭 180㎞의 전략적 요충지다. 중국과 대만의 교류를 표현하는 ‘양안’ 관계도 대만해협의 양쪽 해안이라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대만해협은 1954년과 1958년 두 차례에 걸쳐 포격전의 위기를 겪어야 했다. 중국은 미국과 대만의 상호 방위조약 체결에 항의하며 진먼섬에 대규모 포격을 가했는데 미국의 전술핵무기 사용 경고 이후에야 공격을 멈췄다. 1995~1996년에는 대만 최초의 총통 직접선거가 ‘제3차 대만해협 위기’를 초래했다. 중국은 미사일 발사 실험을 강행하면서 12만 명의 군인을 대만해협 건너편 푸젠성에 배치했다. 당시 미국은 니미츠 항공모함을 투입해 중국의 무력 시위를 견제했다.
대만해협 충돌 위기 때마다 미국에서 동원한 카드는 서태평양과 인도양을 담당하는 7함대 항모 전단 파견이었다. 대만해협에서 도발을 시도하던 중국은 압도적 위력을 지닌 미국의 공군력과 해군력에 밀려 공격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중국이 항공모함 건조를 비롯한 해군력 증강으로 국방 전략을 선회한 것도 대만과의 대치 국면에서 겪은 굴욕 탓이 컸다고 한다.
지난주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가 공산당에 충성하는 애국자만 홍콩의 행정장관, 입법회 의원으로 출마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의 선거제 개편안을 만장일치로 처리했다. 이에 미국은 미사일 구축함인 존핀함을 대만해협에 파견해 대중 압박에 나섰다. 미국 국무부는 홍콩 선거제 개편에 대해 “자유와 민주적 절차에 대한 직접적 공격”이라고 규탄했다. 우리도 민주 절차를 무시하는 중국의 눈치나 보지 말고 민주주의·법치·인권을 중시하는 가치 동맹에 적극 참여해야 할 때다.
/정상범 논설위원 ssang@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