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IT

'실험실 벤처 선구자' 박희재 서울대 교수 "베트남 제자 창업할 때 韓 학생은 취업에 목매"

대학, 논문 매몰된 탓 창업 저변 낙후

데스밸리 극복 도와줄 인프라도 미비

'박희재 창의공간' 열어 全과정 지원

젊은이들에게 도전 정신 북돋워줘야

박희재 서울대 기계공학부 교수가 18일 서울대 301동 1층에 문을 연 ‘박희재 창의공간’ 내 박 교수 얼굴 동판 앞에서 부인 남은현씨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고광본 선임기자박희재 서울대 기계공학부 교수가 18일 서울대 301동 1층에 문을 연 ‘박희재 창의공간’ 내 박 교수 얼굴 동판 앞에서 부인 남은현씨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고광본 선임기자




“그동안 배출한 100여 명의 석·박사 제자 중 베트남 출신 박사는 자국으로 돌아가 창업에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한국 제자들은 창업 도전 사례가 한 건도 없고 오히려 취업에만 매달리고 있습니다.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박희재(60·사진) 서울대 기계공학부 교수는 18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연구실에서 서울경제와 인터뷰를 갖고 “국가적으로 창업 지원에 관해 많은 부분이 나아졌다고 해도 현장에서 피부로 느끼기는 어렵다”며 이같이 한탄했다.

박 교수는 국제통화기금(IMF) 위기를 겪던 지난 1998년 2월 서울대 공대에서 제1호 실험실 벤처기업인 에스엔유프리시젼㈜을 대학원생들과 함께 창업했다. 디스플레이와 반도체 검사 장비에서 탁월한 기술력을 보이며 2005년 코스닥에 상장한 뒤 10만 주(약 80억 원)를 모교에 기부해 연구기금과 장학금으로 쓰게 했다. 그는 “IMF 때 국립대 교수의 겸직 금지 조항으로 창업을 할 수 없었는데 청와대와 관련 당국에 청원도 많이 해 이를 해결하며 창업에 도전했다”며 “제가 연구한 기술로 국가 경제에 기여하고 대학에 대한 기부를 통해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고 했다”고 털어놓았다.

박 교수는 우리 대학이 창업을 활성화하는 분위기로 바뀌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한국 대학이 논문과 아카데미에 치중하는 분위기라 창업이 빈약하다”며 “제가 창업했던 20여 년 전보다 결코 좋아졌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학에서 이공대와 의대의 논문 실적은 좋아지고 있지만 기술이전이나 창업 실적이 소홀히 다뤄지면서 나타난 결과라는 게 그의 분석이다. 그가 “이렇게 창업 생태계가 열악해서는 미국의 명문 대학은커녕 중국 대학과도 경쟁이 될 수 있을지 불안한 심정”이라고 토로한 이유다. 특히 교원과 학생이 창업하려면 창업 3~5년 뒤 위기가 찾아오는 데스밸리를 잘 넘기기 위해 금융, 마케팅, 인수합병(M&A) 생태계가 잘 갖춰져야 하는데 아직 그렇지 않다고 지적한다.

박희재 서울대 기계공학부 교수가 18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대학에서 글로벌 기업가를 많이 배출하는 게 가장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서울경제 DB박희재 서울대 기계공학부 교수가 18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대학에서 글로벌 기업가를 많이 배출하는 게 가장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서울경제 DB



박 교수는 취업에 목매는 대학의 현실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날렸다. 그는 “정부와 대학은 예비 창업자가 아이디어를 갖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며 “외국 우수 인재들은 글로벌 비즈니스를 목표로 창업하는데 우리는 엘리트들이 혁신형 창업을 외면하고 취업에 매달리고 있어서야 되겠느냐”고 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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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창업 지원이 실적 위주로 이뤄지고 있는데 초기 창업 이후 생태계를 잘 구축해야 한다”며 “대학과 사회의 리더들이 기업가 정신이나 창업을 강조해 젊은이들의 도전 정신을 북돋아줬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이와 관련, 서울대 공대는 이날 서울대 301동 1층에 ‘박희재 창의공간’을 개소하고 박 교수의 기술 보국의 뜻과 열정을 이어받아 글로벌 시장에 도전하는 후학 양성에 박차를 가하기로 했다. 예비 창업자의 창업 준비 공간으로 쓰이는 박희재 창의공간은 3차원(3D) 프린팅, 가공·계측·메카트로닉스·기계공학 장비 등을 갖추고 실험·제조 공간으로 쓰이며 온오프라인 회의와 휴식 공간을 두루 갖췄다. 차국헌 서울공대 학장은 “창업 준비와 창업, 설계·제조, 연구개발(R&D) 활동을 실질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했다”며 “창업 멘토링, 서울대기술지주와 기술보증기금의 금융·투자 지원, 포스코·포스코인터내셔날 등이 마케팅·투자 지원 체제도 갖췄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국가 경제가 어려울 때 젊은 엘리트들이 과감히 도전해 사회와 국가에 기여하는 게 절실하다”며 “개인적으로는 가슴 벅찬 박희재 창의공간이 하나의 밀알이 될 수 있도록 잘 가꿔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궁극적으로 서울대가 관악구청·서울시교육청과 준비 중인 관악S밸리와도 연계해 창업자를 키울 것”이라며 “관악S밸리 추진단장을 맡고 있는데 비록 수십 년의 시간이 소요되더라도 이곳을 아시아 최대 스타트업 밸리로 키우는 게 일생의 꿈”이라고 밝혔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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