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으로 촉발된 ‘통상 대결’을 대비하기 위해 교착상태에 빠진 한일 관계 복원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추진하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의 열쇠를 일본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를 결정한 후 주도적으로 CPTPP를 이끌었던 일본이 가입료로 국내 자동차 시장 완전 개방 등 국내 산업계에 가혹한 조건을 내걸 수 있다. CPTPP는 일본을 포함해 기존 참가국 중 한 국가라도 반대하면 가입이 안 된다.
21일 정부와 관련 업계에 따르면 세계 최대 자유무역 네트워크가 될 CPTPP에서 한일 무역 갈등이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CPTPP는 당초 미국이 주도했지만 트럼프 행정부 시절 탈퇴를 결정해 일본과 호주·캐나다·베트남 등 11개 회원국이 수정해 만든 다자간 자유무역협정으로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13%를 차지한다. 올해는 일본이 의장국까지 맡는 상황이라 우리나라의 CPTPP 가입에 일본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 실제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도 지난해 12월 “기존 회원국의 양해가 없으면 간단히는 들어올 수 없다. 신규 가입에는 큰 허들이 있다”고 부정적 입장을 피력했다.
정부는 한일 재무장관회의와 한일 기업 교류에 이어 군사 교류도 상반기 내 재개하는 등 협력을 강화한다는 계획이지만 일본 정부는 강제징용 판결과 위안부 피해 배상 판결 등에 대한 한국 정부의 해법을 요구하면서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나라의 CPTPP 가입을 위해서는 미국의 중재가 필요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최근 한국과 일본을 순방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은 한일 관계 개선을 적극적으로 요구했다. 심상렬 광운대 국제통상학부 교수는 “강제징용 문제와 같은 현안이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본이 한국의 CPTPP 가입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보일 리 없다”며 “한국의 참여를 반대하거나 ‘통행료’를 요구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심 교수는 “CPTPP에 가입하려면 어떤 형태든 한일 관계 개선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세종=우영탁 기자 ta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