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동향

美·日 주도 체제서 제자리걸음…韓 'FTA 모범국'서 밀려날 판

[新냉전 새판 짜는 국제질서]

<상> 금가는 자유무역주의-'무역망 재편' 소극적인 韓

美, 최근 맺은 USMCA 통해

車분야 등 노동 규범 강화하고

국경 간 데이터 이전 의무화

日도 美 새 질서 맞춰 공조 채비

"韓 참여 늦을수록 경쟁국만 得"






중국과 갈등을 이어가는 미국은 주요국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통해 새로운 글로벌 교역망을 구축할 계획이다. 자국에 유리하면서도 중국과의 교류를 제한하는 조항을 협정에 담아 글로벌 교역망에서 중국을 철저히 배제한다는 방침이다. 미국의 이 같은 움직임을 일찌감치 감지한 일본 등은 미국에 보조를 맞춰 새로운 무역 질서를 확대 보급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반면 FTA 선진국이라고 자평하던 한국의 대응은 굼뜨기만 하다. 새로운 무역 질서와의 간극이 커질수록 국내 기업의 수출길은 좁아질 수밖에 없음에도 국내와 중국의 반발을 우려해 적극 나서지 못하는 모양새다.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미국이 주도하는 새로운 질서는 결국 글로벌 표준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며 “우리가 여기에 늦게 참여할수록 일본 등 선제적으로 동참한 경쟁국의 기업만 득을 볼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무역망 새 틀짜기 나서는데

미국이 구축할 새로운 무역 질서는 가장 최근 체결한 다자 협정인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을 통해 엿볼 수 있다. 미국은 한미 FTA로 대표되던 기존의 무역협정 구조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을 계기로 전면 개편했는데 TPP를 탈퇴한 뒤 새로 내놓은 무역협정이 바로 USMCA다. 미국이 FTA 협상 상대국에 따라 내용을 수정하는 경우가 드문 점을 감안하면 USMCA의 주요 내용은 향후 미국이 새로운 무역협정을 짜는 토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USMCA는 미국이 이전에 맺었던 FTA와 달리 노동과 디지털 분야의 규범을 강화하고 있다. 해당 규범은 향후 중국을 배제한 교역망을 구축하는 데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우선 미국은 제품의 노동 부가가치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는 전례 없는 기준을 도입하면서 중국 등 저임금에 기초한 비교 우위 국가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아울러 미국은 ‘디지털 무역’이라는 항목을 협정문에 처음으로 도입하고 국경 간 데이터 이전을 의무화하는 등 디지털 시장 개방도를 대폭 끌어올렸다. 이 역시 데이터 개방에 폐쇄적인 중국을 겨냥해 쓰일 수 있다. 이 외에도 비관세 조치를 다루는 기술 장벽 규범과 위생 검역 조치 관련 규범 등이 한층 강화됐다.


美 뒤따르는 日... 뒤처진 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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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새로운 무역 질서를 제시하자 주요국도 하나둘 발을 맞추는 모습이다. 특히 일본은 USMCA의 기반이 된 TPP 협상에 참여하면서 새로운 무역 규범을 받아들일 준비를 마친 상태다. 데이터 개방 의무화 등 TPP보다 강화된 USMCA 규범에 대해서는 미국과 별도의 양자 협정(미일 디지털무역협정)을 체결하는 등 적극적인 수용 의지를 보이고 있다. 국책 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노동·환경 등에서 USMCA 수준에 준하는 새로운 FTA를 내놓을 것”이라며 “미국이 주도하고 일본이 뒤따르면 새로운 FTA가 글로벌 표준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이처럼 미국과 일본이 손을 맞잡고 글로벌 무역 질서를 재편할 것으로 보이지만 한국의 대응은 소극적이다. 한국은 일본과 달리 TPP 참여조차 소극적이었던 터라 새로운 무역 질서와의 간극이 넓다.

정부 뒤늦게 실무준비 나서지만

정부는 최근 TPP의 후신인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참여를 저울질하며 관련 규범 도입을 논의하고 있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 입장에서 메가 FTA는 당연히 가입해야 한다”면서도 “바이든 행정부의 방침을 잘 살피고 미국과 보조를 맞춰 가입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정부 내에서도 한미 FTA가 USMCA는 물론 TPP와 비교했을 때 상당히 낮은 수준의 무역협정인 만큼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국내 일부 산업계와 중국의 반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만만찮은 상황이다.

일단 정부는 CPTPP 가입을 위해 위생 검역, 수산 보조금, 디지털 통상, 국영기업 등 4대 분야의 실무 단계 정비에 들어갔지만 또 다른 규범의 모델인 USMCA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문제는 USMCA가 우리 자동차 수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노동비용, 근로조건 규범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USMCA에는 자동차 생산 노동자에게 시급 16달러 이상을 지급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중국을 겨냥했지만 중국의 공급망이 필수적인 국내 자동차 업계에는 타격을 주는 규범이다. 안 교수는 “우리가 체결한 통상 협약 가운데 가장 기준이 높은 것이 한미 FTA인데 CPTPP부터 내용이 많이 바뀐데다 USMCA는 그보다 더 규범 수준이 높아 격차를 메우는 과정에서 다양한 이슈가 예상된다”며 “현재로서는 우리나라가 CPTPP에 들어 있는 규범조차 국내 적용이 되지 않고 있어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세종=김우보 기자 ubo@sedaily.com


세종=김우보 기자 ub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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