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둘째를 임신한 38세 여성 K씨. 자연분만으로 출산한 첫째 아이가 혈전·출혈로 뇌 손상을 입어 또 그런 일이 생길까 제왕절개 분만을 희망했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고위험산모·태아통합치료센터는 첫 아이와 부모에 대한 유전자 검사를 통해 부모가 가진 혈액응고장애 관련 유전자 변이 각 1개가 첫째에게 유전돼 출혈에 취약한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둘째는 그렇지 않았다. 의료진은 K씨에게 자연분만을 권했고 둘째는 건강하게 태어났다.
# 임신 8개월째인 B(36)씨는 위장이 크고 양수가 많아 식도폐쇄→ 태아의 호흡기 기형 위험이 있어 고위험산모·태아통합치료센터로 전원 의뢰됐다. 센터는 정확한 진단을 위해 태아 자기공명영상(MRI)을 찍었고 소아 전문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성대 아래쪽 폐쇄가 의심된다’는 소견을 내놓았다. 신생아과·이비인후과·소아외과 등 의료진은 출산 후 발생할 수 있는 위험상황 등을 체크했고 제왕절개로 아기가 태어나자 기도 확보를 위해 곧바로 응급수술을 했다. 아기는 건강한 상태로 퇴원했다.
◇여러 진료과 교수진 30여명이 상담·진료…산과가 ‘코디’ 역할
# 38세 임신부 C씨는 초음파검사에서 태아의 등뼈가 옆으로 굽었다는 동네 병원 산부인과 의사의 얘기를 듣고 아이가 평생 척추장애인으로 살아갈지 모른다는 걱정에 세브란스병원을 찾았다. 척추뼈 가운데 하나가 반쪽만 있으면 척추가 한쪽으로 기울어져 척추측만증과 비슷한 양상을 보이게 된다. 콩팥·심장·소화기관 등에도 기형이 생길 수 있고 유전상담·검사를 해야 할 수도 있다.
고위험산모·태아통합치료센터는 정밀초음파 검사를 통해 태아에게 척추기형, 항문폐쇄를 보이는 바테르증후군과 수신증(콩팥에서 방광으로 내려가는 길이 막혀 오줌이 모이는 신우 등이 늘어난 상태)이 있음을 확인하고 C씨가 관련 진료과 전문의들로부터 전문적 상담과 치료계획을 들을 수 있게 조치했다.
센터에는 여러 진료과 교수진 30여명이 참여하고 있는데 산과가 코디네이터 역할을 한다. 주치의인 산과 전문의는 산모가 주의할 점, 출산방법·시기 등을 알려줬다. 소아정형외과 전문의는 아기가 언제, 어떤 교정치료를 하면 별 문제 없이 생활할 수 있는지 설명하고 생후 3개월째 되는 날을 첫 진료일로 예약했다. 소아외과 전문의는 항문이 얼마나 막힌 상태인지, 항문을 열어주는 수술은 어떻게 하는지 등을 설명하고 분만 다음날 수술하기로 했다. 소아비뇨의학과 전문의는 태아의 수신증이 초음파 검사 결과 1㎝ 정도의 경미한 상태여서 경과관찰을 하며 치료 계획을 세우기로 했다.
# D개인병원은 자연분만 후 자궁이 수축되지 않아 출혈이 계속되는 37세 J씨를 ‘스피드 핫라인’(speed hotline)을 통해 세브란스병원에 전원 요청하고 환자의 상태를 전달했다. 세브란스병원은 환자가 도착하기 전 산부인과·응급의학과·혈액은행·수술방·중환자실 팀원들이 환자를 맞을 준비를 마쳤고 도착 30분 안에 자궁동맥색전술을 응급 시행했다. 이 시술은 출산 후 자궁이 수축되지 않아 출혈이 계속되는 산모의 대퇴동맥을 통해 자궁동맥까지 카테터(관)를 밀어넣은 뒤 임시로 혈관을 막는 물질을 주입, 자궁의 크기를 줄이고 출혈을 멎게 한다. J씨는 자궁을 보존한 채 건강하게 퇴원했다.
권자영 고위험산모·태아통합치료센터장(산부인과 교수)은 “병·의원에서 임신부나 태아에게 이상이 있다고 하면 환자나 보호자 입장에서 ‘혹시 오진 아냐?’ ‘얼마나 안 좋지?’ ‘아기를 낳아도 되나?’ 등 다양한 의문과 걱정에 휩싸이게 된다. 그래서 산과 주치의가 코디네이터가 돼 해당 질환과 관련된 여러 진료과 의사들로부터 전문적 상담·진료를 받을 수 있게 해준다”고 설명했다.
◇응급 콜 대기 시스템 국내 첫 도입…대형병원들도 벤치마킹
태아의 입술이 갈라졌다면 젖을 물릴 수 있는지, 수술은 언제·몇 차례나 하면 되는지 등을 신생아과 전문의와 미리 상담해 불필요한 걱정·공포감을 덜고 마음의 준비도 할 수 있다. 상담했던 전문의는 출산 후 아기의 주치의가 되므로 신뢰감을 가질 수 있다. 고위험 임신부·태아에 대한 풍부한 진료 경험과 우수한 장비·시스템도 장점이다. 태아 초음파는 의사가 아는 만큼 보이고, 태아 MRI는 대학병원급에서만 판독할 수 있다.
권 센터장은 또 전치태반·산후출혈 등 응급상황에 대비한 의료진의 응급 콜 대기 시스템이 연중 24시간 내내 작동한다는 것을 센터의 강점으로 꼽았다. 그는 “환자가 우리 센터로 온다는 응급 콜이 오면 산과·마취과·응급의학과·영상의학과 등 관련 의료진이 30분 안에 시술·수술 등을 할 수 있게 준비한다. 365일, 24시간 이런 콜 대기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으면 5분 안에 500~1,000㏄의 피를 흘리기도 하는 산후출혈 같은 응급상황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다”고 했다. 센터는 국내에서 가장 먼저 이런 시스템을 도입해 10년 이상 발전시켜 왔다. 다른 대형병원들이 벤치마킹한 이유다.
전치태반은 수정란이 자궁 경부 가까이에 착상, 태반이 자궁 입구를 막아 산전·산후 출혈을 일으킨다. 착상에 좋은 자궁내막이 여러 차례 임신으로 줄거나 염증 등으로 흉터가 있는 경우, 자궁근종 절제수술이나 제왕절개수술을 받은 경우 발생빈도가 높아진다. 발생률은 20대 0.3%에서 35세 이상 1%, 40세 이상 2%로 높아진다.
/임웅재 기자 jaeli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