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은평구 옛 증산4구역 주민 371명은 최근 ‘정부의 도심 사업지 후보지 지정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입장문을 국토교통부와 서울시에 발송했다. 이곳 주민들은 지난 2019년 정비 구역이 해제된 후 민간 재개발 사업을 다시 추진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이런 와중에 은평구청에서 갑자기 ‘저층 주거지 사업 후보지로 신청하겠다’는 뜻을 전달해오자 주민들은 “재산권 침해”라며 반대하고 나섰다. 하지만 구청 측은 “어차피 1년 안에 67%의 동의를 받지 못하면 해제되는 만큼 강제로 하라는 얘기는 아니다”라며 후보지 신청을 강행했다.
정부가 31일 ‘2·4 공급 대책’을 통해 공공 주택 단지로 개발할 서울시 내 후보 지역 21곳을 선정해 발표하자 해당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황당하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정부는 금천·도봉·영등포·은평구 등 서울 지역 4개 구에서 109곳의 후보지를 제안했고 이 중 21곳을 선정했다고 밝혔는데 실제로 이 중 대부분 지역은 사전에 지역 주민들의 참여 의사조차 파악하지 않은 경우가 태반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토부는 이에 대해 “주민 의견을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동의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또 이들 지역에서는 2월 5일부터 개발 사업 지역의 주택 등 부동산을 취득하면 우선공급권(입주권)을 주지 않고 현금 청산한다는 점도 반대 요소다.
◇주민 의견도 안 묻고 졸속…벌써부터 반발=서울경제가 조사한 결과 이날 발표된 후보지 주민들은 “전혀 동의한 적이 없다”며 격앙된 반응을 쏟아냈다. 4,139가구로 이날 발표 예정지 중 가장 규모가 큰 옛 증산4구역의 경우 17일에 구청장 면담을 통해 구체적인 진행 상황을 전해 들었다고 한다. 김연기 전 증산4구역 추진위원장은 “저층 주거지 사업에 참여하면 소유권을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넘겨야 하고 사업 기간 내 사고팔지도 못하는 등 주민 재산 침해가 심각하다”며 “시간이 촉박해 일단 371명의 서명만 받아 발송했지만 대부분 주민들은 반대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준공업지 후보지로 선정된 도봉구 창동의 한 주민은 “정부가 ‘사업성이 좋은 곳’이라고 인정해준 것이나 마찬가지니 빨리 후보지에서 탈락해 민간 사업으로 추진했으면 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곳만이 아니다. 다른 지역도 사정은 비슷하다.
정부는 이번에 발표한 1차 후보지만으로도 2만 5,000여 가구 규모의 공급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지만 실제 분위기는 정반대인 셈이다. 이번에 선정된 후보지는 토지 등 소유자의 10% 동의 요건을 확보해야 오는 7월부터 예정 지구로 지정될 수 있다. 이후 1년 내 3분의 2가 동의해야 사업이 확정된다.
아울러 이번 공모에는 강남·양천구 등 서울 핵심 지역 지방자치단체는 응모하지 않았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주민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지자체에서 검토해 국토부에 전달할 수 없다”며 “무리하게 지원할 경우 민원만 야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자체 “주민 동의 관계없이 제출”…사업 난망 불 보듯=주민 의사가 절대적이지만 이번 사업지 선정 과정에서 대부분 지자체는 사전에 주민 동의 여부를 파악하지 않았다. 국토부 관계자는 이날 “주민 의견은 구청 차원에서 다 수렴된 것으로 안다. 정부 혼자 덜렁 발표한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지만 실제로 서울경제가 서울시와 금천·도봉·영등포·은평구에 관련 내용을 확인한 결과 모든 지자체에서 “동의 여부를 사전에 확인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주민 동의 여부와 관련해서는 국토부에서도 언급하지 않았다. 동의 요건은 이번 후보지 선정에서 판단 기준이 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금천구 관계자는 “국토부에서 주민 동의와 관계없이 신청하라고 해서 한 것”이라고 했고, 은평구 관계자도 “사업 요건 중 노후도 기준에 맞춰 자체적으로 조사해서 제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등포·도봉구 등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전문가들도 ‘주민 반대’ 극복이 사업 추진의 핵심 과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공급에 대한 심리적 안정감을 주기 위해 정부가 주민 동의에 앞서 발표부터 한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LH 사태 등으로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가 악화해 2·4 대책 당시보다 사정은 더욱 나빠졌다”고 말했다. 이은형 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발표보다는 예시로 삼을 수 있는, 실제로 사업 추진이 궤도에 오른 사업장이 필요하다. 그래야 주민들의 동의를 끌어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현금 청산도 복병이다. 2월 5일부터 개발 사업 지역의 주택 등 부동산을 취득하면 우선공급권(입주권)을 주지 않고 현금 청산한다는 점이다. 함영진 직방 랩장은 “2·4 대책 이후 주택을 구매한 이들이나 관련 토지주의 사업 동의는 사실상 기대하기 어렵다”면서 “결국 사업의 성패는 참여 의향을 높일 수 있도록 충분한 주민 설명회와 정보 제공, 컨설팅 서비스에 달렸다”고 강조했다. 현금 청산 대상자를 중심으로 하는 집단행동과 반발을 초래할 가능성도 있다. 한 전문가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사업지를 지정하고 현금 청산 공포를 키운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며 “추후 토지 등 소유자들 간의 싸움으로 벌어질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진동영 기자 jin@sedaily.com, 노희영 기자 nevermind@sedaily.com, 양지윤 기자 yang@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