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고 이상반응이 나타나면 ‘백신 휴가’를 사용할 수 있다. 접종 다음 날 의사의 소견서 없이도 하루 휴가를 쓰고, 이상반응이 계속되면 추가로 1일을 더 사용할 수 있다. 공공부문 종사자는 각 사업·시설의 여건에 따라 병가나 유급휴가, 업무배제 등의 조치를 받게 된다. 정부는 기업 등 민간 부문에 대해서 임금 손실이 없도록 별도의 유급휴가를 주거나 병가 제도가 있으면 이를 활용하도록 권고·지도하기로 했다. 백신 휴가가 제도화 되지 않고 권고하는 수준에 그쳐 현실적으로 사용하기 힘들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정부의 결과물과 달리 백신 휴가를 논의하던 초기에는 제도화 방안이 검토됐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지난 달 1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주재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국민들이 안심하고 접종에 참여하도록 백신 휴가를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 총리가 직접 나서 보건복지부 등 관계부처에 제도화 방안을 조속히 검토해 보고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정부는 현실적인 여건을 고려해 백신 휴가를 제도화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사회전략반장은 지난 달 28일 정례브리핑에서 "모든 접종 대상자에게 휴가를 부여할 필요성은 떨어진다고 보고, 이상반응이 나타나는 경우 적극적으로 휴가를 부여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근무가 어려울 정도의 이상반응을 보이거나 의료기관을 방문한 경우는 전체 접종자에 비해 소수라는 것이다. 손 반장은 이어 “정규직 근로자가 아닌 프리랜서나 가사노동에 종사하는 주부 등에 대해서는 휴가를 부여할 방법을 마련하기가 어렵다”며 “현 상황에서 의무 휴가를 적용하면 오히려 (직업·업종별) 형평성 논란을 야기할 위험도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백신 휴가가 ‘권고’ 수준에 불과해 실제 사용으로 이어지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코로나19와 관련해 부당하게 연차 사용을 강요받은 직장인들 사례를 공개하며 정부가 권고한 ‘백신 휴가’ 역시 ‘연차 강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지난 31일 지적했다. 이 단체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엠브레인 퍼블릭에 의뢰해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지난 달 17∼23일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인한 부당한 경험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19.5%가 “연차휴가 사용을 강요받았다”고 답했다. 직장갑질119는 이 결과를 토대로 “코로나 검사도 연차를 쓰라고 강요하는데 백신 휴가를 허용할 사용자가 얼마나 되겠는가”라며 “결국 직장인들은 백신 주사를 맞지 않거나 주사를 맞고 이상 증상이 있더라도 출근을 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이들은 “코로나 검사 휴가를 회사 자율에 맡기거나 백신 휴가를 ‘권고’하는 방법으로는 코로나19 확산을 막고 노동자의 건강을 지킬 수 없다”며 유급병가, 상병수당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백신 휴가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관계 부처를 통해 각 사업장에 대응지침을 배포하거나 경제단체 및 주요 업종별 협회에 협조를 이끌어낸다는 방침이다. 이와 함께 감염병예방법 개정을 통해 접종 후 휴가 부여를 위한 법적 근거도 마련할 예정이다. 손 반장은 “상위 경제단체나 한국경영자총협회·대한상공회의소 등과 함께 기업의 협조를 끌어낼 계획”이라며 “기업 입장에서도 (직원들이) 얼마나 많이 백신을 접종하는가가 작업 현장의 안전성·생산성과도 직결되는 부분이 있어 큰 애로가 있을 것으로 보진 않는다”고 말했다.
/김성태 기자 kim@sedaily.com, 서지혜 기자 wis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