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생활

[여명]오만함이라는 이데올로기

박태준 생활산업부장

정책 오류·독선·위선에 민심 등돌려

與, 보선 참패후 내부서 때늦은 자성

자기 방어일뿐 바뀔거란 생각 안들어

野도 오만에 젖어 미래 망치는 일 없길





서울 시민인 나는 지난 7일 투표를 하지 못했다. 퇴근길에 하려던 계획이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했던 탓에 틀어져 버렸다. 투표장에 갔더라면 나는 몇 번을 찍었을까.



이튿날 아침 검사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휴대폰을 켰을 때 예상대로 서울과 부산 시장 모두 야당 몫으로 돌아가 있었다. 득표율의 격차가 엄청났지만 그마저도 예견됐던 일이어서 놀랍지 않았다. 지난 2016년 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시작으로 19대 대선, 제7회 지방선거, 21대 총선까지 4연승을 달렸던 민주당이 곤두박질친 것이다.

무수한 정책의 오류, 그럼에도 “이 길이 맞다”며 밀어붙인 독선, 그 와중에 끊임없이 꼬리를 물고 나온 여권 인사들의 위선. 서울시 ‘이대남(20대 남성)’의 72.5%가 야당 후보를 뽑고, 콘크리트 지지층이라는 40대 유권자들까지 상당수 등을 돌린 이유는 넘쳐난다.



참패를 당한 후 더불어민주당 의원 일부가 자신들이 추락한 원인을 분석하고 반성했다. 민주당 초선 의원 50여 명이 지난 9일 낸 입장문에는 “우리의 과거를 내세워 모든 비판을 차단하고 나만이 정의라고 고집하는 오만함이 민주당의 모습을 그렇게 만들었다”는 고백이 담겨 있다. 그렇게 잘 알고 있었다면 왜 이제 와서, 너무 늦은 건 아닐까. 아니 알고 있다 해도 소용없는 무엇이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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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린치 미국 코네티컷대 철학과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지적 오만함은 파벌적일 때 가장 치명적이다. 그리고 파벌적인 오만함은 태생적으로 위계적이다.”(우리는 맞고 너희는 틀렸다, Know it all society, 2020) 그는 “파벌적인 오만함은 단순한 태도가 아니라 일종의 사고방식이라 잘 변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민심이 이미 바뀌었음을 선거로 확인한 후에야 나온 반성은 그들도 이미 파벌과 위계 속에서 쉽게 달라질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일지 모른다. 그게 아니었다면 반성과 쇄신은 보궐선거의 사유가 발생했던 그 무렵부터, 부동산 정책이 시장에 대혼란을 가져왔음을 확인한 그 순간부터 시작됐어야 했다.

이제 대통령의 레임덕 가속화가 예고됐고, 등을 돌린 국민들을 달래 내년 대선을 준비해야 하는 지금부터는 뭔가 달라질 수 있을까. 솔직히 나는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 민주당 집권 4년간의 경험에서 비롯된 확신이다. 이미 민주당 중진 의원들은 초선들의 반성문에 반박하고 나섰다. 그들이 달라질 수 없는 이유를 린치 교수는 또 이렇게 설명한다. “오만함의 이데올로기는 그 어떤 반례도 받아들이지 못한다. 여기에는 자기 방어적인 태도가 동반되며, 이는 잘못에 대한 인정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서울과 부산 시장 자리를 모두 가져간 국민의힘 역시 승리에 취할 겨를이 없어야 한다. 집권 세력이 수년 동안 보여준 오만함이라는 이데올로기는 좌와 우를 구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기억해야 할 것은 2번을 찍은 유권자 중 상당수가 왠지 모를 헛헛함에 예전처럼 개표 방송을 보며 축배를 들지 못했을 장면과 이번에 표를 몰아준 2030의 상당수는 여전히 ‘태극기 부대’가 연상되는 정치 집단에 막연한 반감이 있다는 사실이다.

투표소로 가지 못하고 퇴근했던 그날, 아파트 입구에는 꽃망울을 터뜨린 벚꽃이 눈이 부시게 피어 있었다. 분홍빛 꽃잎에 푸른 하늘이 겹쳐지며 한순간 ‘세상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간 풍경’ 같은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바이러스의 기세는 여전하고, 당장 맞지도 못할 백신에 취해 긴장감을 잃은 탓에 하루 확진자가 600명을 오르내린다. 이렇게 불안한 시절에 확인한 오만함의 결과는 국민들에게 피로감만 더하게 한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드라마 속 김혜자 님의 목소리가 더 큰 위로가 되는 2021년 4월 봄이다.

/박태준 기자 june@sedaily.com


박태준 기자 jun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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