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상황에서 ‘드라이브 스루’ 등 창의적인 방역으로 전 세계로부터 극찬을 받았던 K방역이 졸지에 ‘백신 접종 후진국’으로 전락한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정부의 안이한 백신 확보 대책을 첫손에 꼽는다. 지난해 2월부터 국내에도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했지만 국민들이 방역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면서 미국이나 일본 등 해외에 비해 신규 확진자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정부는 당시 다른 국가들이 개발 비용을 지원하거나 대규모 선구매 자금을 미리 지불하면서 적극적으로 백신 확보에 나설 때도 “확진자 상황이 여유가 있기 때문에 해외 접종 상황을 지켜보고 안전한 백신을 도입해야 한다”고 여유를 부렸다. 아스트라제네카(AZ), 화이자, 모더나 등 글로벌 제약사들이 백신을 속속 개발하면서 백신이 궁극적인 ‘게임체인저’로 주목받으며 전 세계가 달려들어 백신 확보에 나서자 사정이 달라졌다. 안전한 백신을 골라서 확보하기는커녕 안전성과 효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백신들조차 확보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도 지난해 말 "국내 확진자 수가 100명 수준이어서 백신에 대한 의존도를 높일 생각을 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인정하기도 했다. 한 백신 전문가는 “확진자 관리, 백신 확보, 치료제 확보, 의료 인프라 등은 모두 유기적으로 움직여야 했는데 당국은 확진자 관리에만 집중했다”며 “백신 개발사 입장에서도 개발 단계부터 자금을 댔거나 대규모 선구매한 국가들과 다른 국가에 차등을 둘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뒤늦게 백신 확보에 나섰지만 담당 공무원에게 면책권과 충분한 예산을 주지 않는 소극적인 대응으로 또다시 악수를 뒀다. 우리 정부가 백신 확보에 나선 때는 지난해 3~5월에 비해 조건이 훨씬 까다로워진 상태였다. 이미 선구매한 국가들에 비해 가격과 조건 등이 구매자에게 훨씬 불리하게 바뀌었지만 백신 구매 담당자가 시장 변화에 대응할 ‘무기’를 쥐지 못했다.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해 12월 국회 청문회에서 백신 확보 관련 질문에 대해 “공무원은 일이 끝나면 감사원 지적으로 불이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면책 관련 법적 근거가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밝혔을 정도다. 의료계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하반기에는 이미 선금이 아니라 구매 금액 100%를 모두 지급해도 백신을 구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도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장기화하면서 백신이 유일한 게임체인저로 주목받자 주요 백신 개발국들이 자국 우선주의 경향을 보이면서 백신 확보는 더 꼬였다. 실제 미국·영국 등 주요 백신 개발국들은 백신 수출을 금지하거나 자국 우선 공급을 압박하는 등 백신을 자원화하려는 움직임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우리 정부도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미국 모더나 백신 확보에 나서기도 했지만 아직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재 국내 백신 개발 업계는 임상 대상자 확보 등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내년 이후에나 국산 백신 개발이 가능할 것”이라며 “정부가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위해 보다 적극적이고 공격적으로 지원해야 ‘백신 주권’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지혜 기자 wis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