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수급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서 기업을 중심으로 한 민간 외교의 필요성에 대한 정치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다음 달로 예정된 한미정상회담에서 기업의 민간 네트워크까지 총동원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라는 위기의식이 커지면서다. 정치권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반도체 패권을 강조한 가운데 삼성이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다는 분석을 제기하고 있다. 미국이 필요한 반도체와 한국이 필요한 백신의 이른바 ‘빅딜’이다. 이처럼 빅딜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이재용 삼성 부회장 사면과 동시에 ‘백신특사’ 역할을 부여해야 한다는 제안이 정치권에서 제기되고 있다.
19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곽상도 국민의힘 의원은 박범계 법무부 장관에게 “바이든 대통령은 반도체 최고경영자(CEO)들과 화상회의를 열어 반도체 패권 탈환을 선언했다”며 “전 세계가 반도체 패권 경쟁 중인데 이 부회장은 15개월째 수감 중”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총수가 수감된 상태로는 반도체 전쟁에서 적시에 대처하기가 어렵지 않겠느냐”며 “이 부회장의 가석방을 검토했느냐”고 물었다.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서울경제와의 통화에서 “이 부회장이 현재 영어의 몸으로 외국 동행은 제약되겠지만 전 지구적 재난 상태를 고려해야 한다”며 “국익을 생각해 역할이 있으면 (사면이나 문재인 대통령의 방미 시 동행이) 필요하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안 의원은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중국 덩사오핑의 말을 빌려 ‘흑묘백묘’라고도 부연했다. 다른 여당 의원도 “대한민국 대표 선수로서 삼성은 미국과 반도체 딜을 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다”며 “백신 수급을 해소할 수 있는 빅딜 결정을 총수 부재로 내리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부회장의 사면이 필요할 정도로 급박한 상황”이라며 “반도체를 지렛대로 삼아 백신 민간 외교의 지름길을 만들 수 있다. 이 부회장의 백신특사 역할론이 절실해지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야당은 구체적인 방식까지 제시했다. 김근식 국민의힘 비전전략실장은 “오는 5월 한미정상회담 때 이 부회장을 임시 석방해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미국으로 가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야당 의원은 “이명박 정부 시절에도 비난을 감수하고 이건희 전 회장을 사면해 평창동계올림픽을 유치할 수 있었고, 성공했다”며 “이번에는 백신과 반도체를 연계한 발상의 전환을 통해 백신 수급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종호 기자 joist1894@sedaily.com, 구경우 기자 bluesquar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