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국석유공사의 부채가 자산 규모를 넘어서면서 1979년 창사 이래 처음으로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빠진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대외 차입금 의존도가 83%에 달하면서 이자 비용만 연간 4천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석유공사는 부실자산 매각 등을 통해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경영정상화까지는 갈 길이 멀다는 분석이 나온다.
◇ 창사 이래 첫 자본잠식…자산보다 부채가 1조1천억원 많아
20일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알리오)에 따르면 석유공사의 지난해 총부채 규모는 18조6천449억원으로, 전년보다 5천139억원 늘었다.
반면 자산은 이 기간 18조6천618억원에서 17조5천40억원으로 1조1천578억원 감소했다.
석유공사 부채는 2006년 3조5천억원대였으나 2011년 20조원을 넘어섰다. 2017∼2018년에는 17조원대에 머물다가 2019년 18조1천억원으로 늘더니 지난해에는 결국 자산 규모를 넘어섰다.
석유공사의 차입금 의존도(이자부담부채/총자산)는 83%에 달했다. 이자를 부담하는 부채는 14조6천685억원으로, 연간 이자 부담은 4천억원이 넘는다.
석유공사가 부채의 늪에 빠진 데는 4조8천억원이 투입된 캐나다 하베스트 유전 인수, 1조원가량이 투입된 이라크 쿠르드 유전-사회간접자본(SOC) 연계 사업 등 이명박 정부 시절 차입에 의존해 무리하게 벌였던 해외자원개발 사업이 실패한 탓이다.
석유공사는 "해외 석유 매장량 확보를 위해 해외 석유개발기업 인수합병(M&A)과 자산인수를 확대하면서 이를 위한 외부차입이 증가해 2008년 이후 이자 부담 부채가 늘었다"고 설명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해에는 코로나19에 따른 유가 하락의 직격탄을 맞았다. 지난해 두바이유 가격은 연평균 배럴당 42.29달러로, 전년의 63.53달러보다 33% 하락했다. 이 때문에 석유공사가 과거 배럴당 80∼100달러대 샀던 해외유전 등의 자산가치도 낮아졌다.
◇ "허리띠 졸라매고 새 수익원 찾아라"
석유공사의 부채 문제는 단기간에 개선되기는 힘들 전망이다. 이 회사의 '2020~2024년 중장기 재무관리계획'에 따르면 공사 부채는 2024년에도 20조원에 달할 것으로 관측됐다.
석유공사는 빚더미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구책 마련에 몰두하고 있다. 부실 자회사를 매각하고, 내부 허리띠를 졸라매는 방식으로 개선 방안을 모색 중이다.
올 초에는 페루 석유회사 사비아페루 지주회사(OIG) 지분 50%를 전량 매각했다. 석유공사는 콜롬비아 국영석유사 에코페트롤과 함께 2009년 사비아페루를 인수하고 생산 유전 1곳과 탐사 광구 1곳을 개발해왔다.
캐나다 하베스트 유전 등 비우량 자산 매각도 추진 중이다.
국내 대륙붕 탐사 사업에도 나선다. 오는 6월부터 대륙붕 유망 지역 내 탐사 시추를 목표로 준비 작업을 진행 중이다. 2022년 생산이 종료되는 동해 가스전 시설을 활용해 부유식 해상 풍력 발전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현재 예비타당성 심사가 진행 중이며 이달 말 심사 결과가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공사는 최근 2년에 걸쳐 인력 구조조정을 실시했다.
이와 별개로 2017년 유동성 부족으로 코람코에 2천200억원에 매각한 울산 본사 사옥을 재매입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매각 당시부터 매년 85억2천700만원씩 5년간 약 426억원에 달하는 임대료를 낸 탓이다.
공사 관계자는 "높은 임대료를 주고 빌려 쓰기보다 재매입하는 것이 낫지 않느냐는 의견이 나와 현재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 자원개발 2차 TF 권고안 곧 공개…"공적자금 투입은 미정"
이런 가운데 지난해 7월 활동을 시작한 '해외자원개발 혁신 2차 태스크포스(TF)'는 이르면 이달 중 권고안을 내는 것을 목표로 마무리 작업을 벌이고 있다.
민간전문가들로 구성된 TF는 약 9개월간 석유공사를 비롯한 자원 공기업의 재무 상황과 해외자원사업 현황, 경제성 및 사업 유지 여부 등을 광범위하게 논의했다.
권고안에는 공기업의 구조조정과 기능 개편 방향, 정부 지원 원칙 등이 포괄적으로 담길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석유공사의 자력 회생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결국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하게 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그러나 정부 관계자는 "TF 권고안에서 공적자금을 투입해라 마라와 같은 구체적인 지침은 제시하지 않을 것"이라며 "정부가 책임지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식의 권고가 나온다면 여러 해결책을 고민해보겠지만, 아직 공적자금 투입 여부를 말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만 정부는 석유공사의 기존 자원개발 사업과 관련한 출자는 정상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올해는 약 400억원을 출자했다.
자원개발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석유공사의 이자 부담만 줄여줘도 회생 속도는 빨라질 것"이라며 "당장은 문제가 없을지 모르지만, 지금과 같은 경영상태가 유지되면 장기적으로 해외자원개발 사업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말했다.
/세종=김우보 기자 ub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