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위안부 피해자 2차 손배소송 각하…석달만에 정반대 판결한 법원 "국제법따라 日 면책권 인정"

伊 강제노역 ICJ판례 근거로 제시

판단 엇갈려 소송 장기화 불가피

정부가 직접 韓日관계 풀기 나서야

이용수 할머니가 21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국내 법원에 제기한 2차 손해배상 청구 소송 선고 공판이 난 뒤 서울 서초동 중앙지방법원에서 나오고 있다. 재판부는 이 할머니 등 피해자와 유족 20명이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각하했다. /연합뉴스이용수 할머니가 21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국내 법원에 제기한 2차 손해배상 청구 소송 선고 공판이 난 뒤 서울 서초동 중앙지방법원에서 나오고 있다. 재판부는 이 할머니 등 피해자와 유족 20명이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각하했다. /연합뉴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국내 법원에 낸 2차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각하됐다. 재판부는 국제사법재판소(ICJ) 판례 등 국제관습법을 근거로 일본 정부의 ‘국가면제(주권국가가 다른 나라의 재판 관할권으로부터 면제된다는 원칙)’를 인정했다. 지난 1월 같은 법원에서는 일본 정부의 면책권을 인정하지 않고 위안부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이 불과 3개월 만에 정반대의 판단을 내린 셈이다. 위안부 피해자들은 즉각 항소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는 등 소송 장기화가 불가피해졌다는 분석이다. 실타래처럼 꼬인 한일 관계의 해법을 놓고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5부(민성철 부장판사)는 21일 고(故) 곽예남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 20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을 부정하지 않고 한일 합의에 의해 손배 문제도 모두 해결됐다고 보지 않는다”면서도 “현 시점에서 국가면제에 관한 국제관습법, 대법원 판례 등을 보면 외국인 피고에 대한 손배소가 허용될 수 없다”고 각하 이유를 밝혔다. 각하는 소송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경우 본 안을 판단하지 않고 내리는 결정으로 원고가 패소했다는 의미다.

재판부는 이어 “피해 회복 등 위안부 피해자 문제는 대한민국이 여러 차례 밝힌 바와 같이 외교적 교섭을 포함한 대내외 노력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고 판시했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1·2차 소송 판결을 가른 건 ‘국가면제’의 인정 여부다. 위안부 피해 1차 소송 재판부는 “국가가 반인권적 행위로 피해자들에게 극심한 피해를 줬을 경우까지도 재판권이 면제된다고 해석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며 국가면제를 적용하지 않았다. 반면 위안부 피해 2차 소송 재판부는 “대한민국은 외국을 상대로 한 민사재판권 행사 범위에 관한 법률을 제정한 바 없다”며 “이번 사건에서 국가면제 인정 여부는 오로지 ‘국제관습법’을 따라야 한다”고 전제했다. 국제 관습법도 국내 법률과 동일한 효력을 갖는 ‘규범’이라는 취지다.

관련기사



법원은 국제관습법의 추세를 설명하는 근거로 국제사법재판소(ICJ)의 2012년 판결을 제시했다. 이탈리아 법원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에 의한 강제 노역·민간인 살해 피해자들이 독일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반인권적 행위는 국가면제를 주장할 수 없다’는 취지로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반면 ICJ는 “인권침해로 국가면제를 부정하는 것을 일반적인 관행으로 볼 수 없다”면서 “대다수의 국가는 오히려 같은 사안에서도 국가면제를 인정하고 있다”며 독일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이어 “이탈리아 정부는 독일 정부와 외교적 협상에 의해 권리 구제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며 외교적 교섭에 의한 문제 해결 방안을 제시했다.

위안부 피해 2차 소송 재판부도 “대한민국의 외교 정책과 국익에 잠재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라며 법원 밖에서 문제를 풀어나갈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2015년 이뤄진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 “외교적인 요건을 구비하고 있고 권리 구제의 성격을 갖고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이번 사건을 “정책 결정이 선행돼야 할 사항”이라면서 “법원이 추상적인 기준만 제시하며 예외를 인정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판시했다. 사실상 외교적 해결을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한 것이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두 차례 소송에서 정반대 결과가 나오면서 정부의 셈법도 복잡해질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일본을 상대로 한 위안부 피해자 배상 판결이 엇갈리고 소송 비용 지급 등 논란도 제기되면서 대법원 판단이 나오기까지 문제 해결이 힘들어질 전망이다. 1차 판결의 경우 일본 정부가 항소하지 않아 확정됐다. 재판부는 ‘일본이 피해자들에게 소송 비용까지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리면서도 이후 ‘소송 비용은 추심할 수 없다’고 결정했다. 소송비용을 추심할 경우 국제법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에 따라 1차 판결에 따른 강제 집행도 이뤄지기 어려워졌다.

일련의 상황에 따라 사실상 ‘공’은 정부로 넘겨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2차 소송의 재판부가 ‘외교적 해결’을 간접적으로 제안했고 대법원까지 사건을 끌고 가기에는 피해자들이 고령인 점과 한일관계 경색 등을 감안했을 때 사태 해결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민구 기자 1min9@sedaily.com, 이진석 기자 ljs@sedaily.com


한민구 기자·이진석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