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스타 영화

[인터뷰] '비와 당신의 이야기' 강하늘 "빈칸 있는 시나리오, 상상할 수 있어서 매력적이었죠"

강하늘 / 사진=(주)키다리이엔티 제공강하늘 / 사진=(주)키다리이엔티 제공




군 전역 후 첫 영화, 4년 만의 스크린 복귀작. 배우 강하늘이 ‘비와 당신의 이야기’로 스크린으로 돌아오면서 초점이 맞춰지던 것들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에게 그런 의미들은 중요하지 않았다. 마음속을 휘젓는 시나리오에 끌렸을 뿐. 그는 ‘빈칸’이 많은 시나리오를 하나하나 채워가며 희열을 느꼈다.



강하늘의 마음을 움직인 ‘비와 당신의 이야기’(이하 ‘비당신’)는 뚜렷한 목표도 없이 지루한 삼수 생활을 이어가던 영호(강하늘)가 어느날 문득 초등학생 시절 좋은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는 친구 소연을 떠올리고 무작정 편지를 보내면서 시작된다. 아픈 언니 소연을 대신해 소희(천우희)가 영호에게 답장을 보내고, 어느덧 두 사람은 무료한 일상 속에서 편지를 통해 서로에게 위안이 된다. 설레는 마음을 주고받던 두 사람은 ‘비 오는 12월 31일에 만나자’는 가능성 낮은 약속을 한다. 22일 화상 인터뷰를 통해 만난 강하늘은 ‘비당신’을 오랜 갈증 끝에 만난 작품이라고 표현했다.

“최근에 제가 봤던 영화들은 감상하게 되는 느낌이었어요. 기승전결과 메시지, 연기톤, 정보 등이 확실하다 보니까 머릿속으로 깊이 들어갈 여지가 없었죠. 시간은 잘 가고 재밌었지만, 한 번쯤은 극이 흘러가는 내내 나의 머릿속과 마음속으로 들어가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나고 싶었어요. 그러던 와중에 ‘비당신’ 시나리오를 보니까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매력이 있더라고요.”

작품은 인물이나 장면 사이의 인과관계, 전후사정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이야기의 흐름과 전체적인 분위기에 더 집중한다. 이 때문에 일부 관객들은 불친절하게 느낄 수 있겠지만 이런 ‘빈칸’ 덕분에 감성이 극대화된다. 강하늘은 이러한 부분을 ‘여백의 미’라고 표현했다.

“처음에 대본을 읽고 가장 좋았던 부분은 빈칸이 많다는 것이었어요. 영호라는 캐릭터가 빈칸이 많은데 감독님, 작가님은 연기자의 느낌대로 빈칸이 채워졌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하나하나 다 설명하려고 하기보다, 대본에 나와있는 순간순간만을 더 정확하게 연기해야만 그 빈칸이 매력적으로 느껴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여백의 미’를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했어요.”

그는 영호의 빈칸을 채우기 위해 자신을 투영하는 작업을 거쳤다. 이른바 캐릭터를 ‘강하늘화’ 시킨 것. 연기하는 자신도 자연스럽게, 보는 이들도 편하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20대 초반의 이야기를 다루는 만큼, 그 시절의 강하늘을 다 꺼내왔다.

“그 시절 감성들은 가로본능 휴대폰 같은 소품들로 표현했다면, 영호의 감정을 연기할 때는 ‘그때 내가 어땠었지?’라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다른 작품에서는 어떤 역할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영호는 조금 더 강하늘스럽게 표현하려고 노력한 거예요.”

강하늘 / 사진=(주)키다리이엔티 제공강하늘 / 사진=(주)키다리이엔티 제공



상대역 천우희와는 극 중에서 편지로 소통하기 때문에 대면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처음에는 서로의 감정선을 잇기 위해 1단계부터 3단계까지 감정의 폭을 나눠 촬영한 뒤 맞춰보곤 했지만, 서로의 내레이션을 계속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맞춰갔다. 오히려 직접 마주하고 연기하는 것 보다 훨씬 더 깊은 울림이 있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목소리만 듣고 더욱더 풍부하게 표정과 상황을 상상할 수 있어서 제약 없이 표현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내레이션에 더욱더 심혈을 기울였다.

관련기사



“관객들이 내레이션을 들으면서 (극의 흐름을) 따라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어떻게 하면 관객들의 집중을 흩트리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배경 음악처럼 들릴 수 있게 할까 고민했어요. 목소리 톤 같은 단순한 부분이 아니라, 영화의 한 장면에 어울리고 그 장면 밑에 깔리는 것처럼 하려고 했죠."

강하늘은 극 중에서 천우희 보다 특별출연한 배우 강소라와 붙는 신이 더 많다. 2014년 드라마 ‘미생’에 함께 출연해 친구가 된 강소라와는 호흡에 대해 두 말할 필요 없을 정도로 잘 맞았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정장이 복고풍 의상으로 바뀌었고, 미묘한 감정이 암시됐던 당시와는 다르게 강소라만의 짝사랑으로 설정됐다.

“우리의 호흡에 대해 설명하기 보다 예를 들어 에피소드를 이야기하자면, 포장마차 신에서 촬영을 준비하는 시간에 우리끼리 ‘미생’이나 광고 촬영 이야기를 했었거든요. 그러다가 한참 지나서 ‘촬영을 왜 안 하시지?’하면서 돌아봤더니 모두 우리의 이야기가 끝나기를 기다렸더라고요. 그 정도로 오랜만에 만났지만 얼마 전까지 친하게 지냈던 친구 사이처럼 정말 잘 맞았어요.”(웃음)

강하늘 / 사진=(주)키다리이엔티 제공강하늘 / 사진=(주)키다리이엔티 제공


강하늘은 ‘비당신’을 비단 멜로라기보다 청춘의 한 페이지로 생각했다. 누군가는 영호의 행동들이 이해가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런 영호의 모습 또한 성장해나가는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색다른 느낌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는 멜로로 읽었지만, 점점 인물들이 커가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영호와 아버지, 형과의 관계, 학업 스트레스 같은 표현들이 남녀가 서로 좋아하는 것보다 성장의 촉진제가 되는 것 같더라고요. 아직 정제되지 않은, 갈팡질팡하는 시점에 멈춰있는 캐릭터인 것 같아요."

‘비당신’이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인 만큼, 강하늘 또한 영호를 연기하며 20대 초반 시절 자신의 모습을 추억했다. 그는 영호처럼 미래에 대한 확신 없이 불안한 시기를 거친 스무살 시절, 매일 극장에서 공연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며 많은 생각을 했다. 맥주 하나를 손에 쥐고 버스를 타러 걸어가는 수십분의 시간 동안, 내면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졌다. 영호를 보며 그 시간들이 계속 생각났다.

“스무살에 하루하루 공연을 끝내고 그날 있었던 실수를 되짚어보고, ‘내일 조금 더 잘해볼까?’ ‘선배님들은 어떻게 그렇게 잘할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청계천을 걸으면서 맥주를 마시는 게 굉장히 위안이 되더라고요. 지금은 ‘비당신’을 통해 저도 성장한 것 같아요. 이전에는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고만 생각했는데, 캐릭터에 나 자신으로 다가가도 편하고 즐겁다고 느꼈어요.”

“제 욕심이겠지만 이 작품이 다른 사람들에게 ‘8월의 크리스마스' ‘시월애’ ‘접속’과 함께 언급될 수 있었으면 해요. 시간이 지나도 다시 한번 돌려볼 수 있는 작품이 되면 좋을 것 같아요.”

강하늘 / 사진=(주)키다리이엔티 제공강하늘 / 사진=(주)키다리이엔티 제공


/추승현 기자 chush@sedaily.com


추승현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