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의 우버로 불리는 그랩이 기업가치 396억 달러(약 44조 원)를 인정받으면서 뉴욕증시 입성을 앞두고 있다. 그랩은 독자 상장 방식이 아니었다. 기업인수목적회사(SPAC·스팩)와 합병하는 식으로 상장한다. 우리나라 스팩은 중소형사의 코스피 입성에 주로 활용되지만 미국에서는 유니콘 기업의 상장 통로가 되고 있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스팩을 활용한 유니콘 기업의 코스피 상장이 현실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증권거래소가 시가총액 1조 원 기업에 대해 코스피 입성 문턱을 대폭 낮췄고 이에 맞춰 1,000억 원에 육박한 스팩의 출시도 앞두고 있다.
‘NH스팩19호’를 총괄 기획하고 있는 김중곤(사진) NH투자증권(005940) ECM본부장은 26일 “공모 금액만 800억 원에 달하는 스팩”이라면서 “이 상품이 나오면 공모보다 스팩을 통해 코스피에 입성하는 것이 유리한 유니콘 기업들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NH19호스팩은 800억 원 조달을 목표로 다음 달 6~7일 기관 청약을 진행한 뒤 11~12일 일반 투자자 청약에 나선다. 그는 “NH스팩19호의 규모(약 1,000억 원)를 고려할 때 1조~2조 원 몸 값의 유니콘과의 합병도 충분히 가능하다”며 “바이오부터 4차 산업 등 성장성과 사업성이 있는 유니콘이 그 대상”이라고 말했다. 김 본부장은 SK바이오팜부터 빅히트·SK바이오사이언스까지 조(兆) 단위 공모를 성공적으로 끝낸 기업공개(IPO) 분야의 대표 선수다. 그랬던 그가 스팩을 통한 유니콘 기업의 상장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스팩과 유니콘의 결합 가능성에 대해 긍정적이다. 거래소가 재무 상태와 무관하게 시가총액이 1조 원을 넘기만 하면 코스피에 상장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췄지만 유니콘 기업들에는 여전히 넘어야 할 벽이 있다는 점을 주목했다. 김 본부장은 “기업가치 1조 원 안팎의 기업들은 시장의 흐름에 상당히 예민하다”면서 “평가 결과 기업가치가 1조 원에 미달하면 상장 자체가 무위로 돌아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스팩과의 합병을 통하면 기업가치를 정한 뒤 공모 절차를 거치기 때문에 불확실성이 크게 줄어든다. 유니콘 기업의 자금 조달 역시 상대적으로 수월해진다.
김 본부장은 “스팩과의 합병으로 상장하면 유통 물량이 많지 않아 주가 상승 가능성이 높고, 필요할 때 유상증자도 수월하다”고 설명했다. 공모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이뤄지는 기업가치 할인도 최소화할 수 있다. 일반 공모 상장 기업은 기업 몸값을 책정한 뒤 공모주 프리미엄으로 이를 최대 40%가량 할인한다. 하지만 스팩과 합병하면 자산 및 수익가치를 할인 없이 인정받을 수 있다.
앞으로 많은 대형 스팩이 등장할 것이라는 예측도 했다. 김 본부장은 “스팩은 1·2기를 거쳐 이제는 질적으로 업그레이될 3기에 진입할 것”이라면서 “거래소의 제도 개선과 미국의 스팩 열풍 영향으로 대형 스팩의 등장은 시간문제”라고 강조했다.
/김민석 기자 seo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