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노환으로 선종한 정진석 추기경은 마지막까지 연명치료를 거부한 채 각막을 기증하고 떠났다. 그는 지난 2월 병세가 악화돼 병원에 입원하면서 "연명치료를 하지 않겠다며 사후 각막을 기증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서울대교구는 정 추기경이 "만약 나이로 인해 장기 기증 효과가 없다면 안구라도 기증해서 연구용으로 사용해줄 것을 연명계획서에 직접 적었다"고 전했다.
정 추기경은 생명 문제를 사목활동의 최우선으로 둘 정도로 생명 문제에 특별한 관심을 보여왔다. 정치, 사회적 문제에 대해 공식 발언을 자제해왔지만 평소 생명과 관련한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을 가감 없이 드러내기도 했다. 이러한 행보는 그가 사제의 길을 택하게 된 것과도 연결돼 있다. 정 추기경은 1950년 서울대 화학공학과에 입학했지만 6.25 전쟁을 겪으면서 대학을 그만두고 사제의 길로 방향을 바꿨다. 당시 스무 살이던 정 추기경은 폭격으로 동생을 잃으면서 큰 충격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1954년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 입학한 그는 1961년 사제 서품을 받은 뒤 본격적으로 생명 문제에 관심을 가져왔다. 청주교구장 시절에는 음성 꽃동네 설립을 적극 후원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서울대교구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에는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고자 2005년 서울대교구 내에 생명위원회를 신설하고, ‘생명의신비상’을 제정해 생명운동에 힘썼다.
당시 사회적으로 줄기세포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던 시절 정 추기경은 "배아도 인간 생명"이라며 줄기세포 연구에 반대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정 추기경이 사후 장기기증에 서약한 것도 이 때였다. 추기경 시절인 2007년에는 가톨릭대학교에 생명대학원을 설립해 은퇴하기 전까지 생명운동에 있어서 종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모든 이에게 모든 것(Omnibus Omnia)' 그의 첫 사목 표어대로 그는 마지막까지 모든 것을 나누고 떠났다.
/최성욱 기자 secret@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