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로 여는 수요일] 들똥


김혜수


꽃구경 나온 아낙이

무덤자락에 다급한 들똥을 눈다

뒤를 온통 들킨

들킨 줄도 모르는

이승이 저승을 향해

허연 볼기짝 치켜들고 끙끙댄다

완성되지 못한 문장 끝에 찍힌 물음표를 닮은

황금색 들똥

갓 지은 밥처럼 모락모락 김을 피워 올리며

무덤 한쪽을 뜨듯하게 데운다



간만에 친목회 대절버스 타고 꽃구경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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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똥을 누는 저 아낙도

누군가 내지른 물음표다

질문에 화답하듯 숲이 내지른

철쭉이며 산벚꽃이며 산수유

까짓것 이번 생엔 퍼질러 앉아

똥이나 실컷 누자고

질문이나 실컷 하자고

물음표 대롱대롱 매달고

용을 쓰는 허연 볼기 사이로

태양이 뉘엿





아침마다 정화수 같은 세라믹 우물에 걸터앉아 밥이 변한 것을 내리며 이것은 흘러 흘러 어디로 가나, 미안하고 궁금했는데 저 들똥 반가워라. 낯선 물길 걸리버처럼 표류하지 않고 무사히 착륙하였구나. 지면과 닿으며 힘찬 물음표가 되고 있구나. 본디 김조차 모락모락 나던 것이었구나. 옛 어른들 ‘뜨거운 밥 먹고 식은 소리 하지 말라’ 하셨지. 식은 밥 먹어도 뜨거운 들똥 누며 한세상 소풍 가자. 물음표로 나온 세상, 느낌표 찍으며 가자. 코로나로 축제는 취소되고, 대절 버스도 그리운 날들이지만 꽃 세상은 더욱 붉구나. 내년 봄 저 무덤 자락에 피어난 할미꽃은 유난히 튼실하겠다. <시인 반칠환>

/여론독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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