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설] 예타 면제 100조도 모자라 ‘둑’마저 허물자는 건가


대규모 국책 사업의 경제성 여부 등을 검증하는 예비 타당성 조사를 무력화하려는 정치권의 움직임이 내년 대선을 앞두고 더욱 확산되고 있다. 27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주최로 열린 예비 타당성 조사 제도 개선 공청회에서 예타 제도를 손봐야 한다는 주장들이 쏟아졌다. 여야 의원들은 “내 지역구에는 아직 고속도로가 없다”며 이를 모두 예타 탓으로 돌리고 이 제도를 수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1대 국회에서 1년 동안 발의된 예타 관련 법안만 벌써 25개에 달한다. 이 가운데 22개 법안의 골자가 예타 권한을 기획재정부에서 빼앗거나 예타 대상 자체를 축소하자는 것이다.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예타 조사 권한을 기재부에서 각 중앙 부처로 넘기자는 법안을 냈다. 김 의원의 법안은 특히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해 필요한 사업은 국가균형발전위원회에서 예타를 실시하도록 했다. 이렇게 되면 지역 선심성 사업 검증 과정에서 구멍이 숭숭 뚫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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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경숙 민주당 의원은 예타 결과를 국회가 심사해 필요한 경우 정부에 재조사를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사실상 국회가 예타 권한을 가져와 거대 여당인 민주당의 입맛대로 예타를 주무르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그렇지 않아도 현 정부 들어 예타 면제가 남발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첫 해인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예타 면제 규모는 96조 원이 넘는다. 특별법 제정으로 예타 면제가 확실시되는 가덕도신공항까지 포함하면 100조 원이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 같은 예타 면제 규모는 이명박 정부(60조 원), 박근혜 정부(24조 원) 때를 합친 것보다 더 많다.

김대중 정부 당시인 1999년 도입된 예타 제도는 선심 사업 등을 걸러내는 역할을 해왔다. ‘재정의 정치화’에 제동을 거는 최소한의 장치였다. 예타가 무력화되면 경제성 없는 사업이 우후죽순 진행돼 재정 낭비가 심화할 게 뻔하다. 나라 곳간 사정이 어려운 지금은 오히려 퍼주기 성격의 사업에 엄격히 예타를 적용할 방법을 고민해야 할 때다.

/논설위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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