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고통 경험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는 고통이 무의미한 것으로 지각된다는 것이다. 고통 앞에서 우리를 지탱해주고 방향성을 제시해줄 의미연관이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고통을 감내하는 기술을 완전히 상실했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은 책 '고통 없는 사회'에서 오늘날의 세계는 고통을 회피하며 진통제를 움켜쥐는 '진통사회'이자, 삶을 의미 있게 하는 것들을 상실하면서까지 생존에 전력하는 '생존사회'라고 진단한다. 개인과 사회가 고통을 대하는 태도를 분석한 이 책은 '왜 우리는 삶에서 고통을 추방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저자의 눈에 비친 세상은 고통공포에 사로잡혀 있다. 현대사회에서 고통은 무의미한 것으로 여겨진다. 사람들은 사랑의 고통조차 회피한다. 이러한 고통공포는 사회, 문화, 예술 뿐만 아니라 정치의 장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고통스러운 토론은 사라지고, 더 나은 해결책을 찾기 위해 논쟁을 벌이는 대신 막연한 중도의 '진통지대'에서 몸을 사리는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좋아요' 일색인 소셜미디어는 저자가 바라본 고통공포의 현실을 그대로 드러낸다.
책은 환경이 우리에게 주는 고통이 줄어들면서 우리의 고통 신경은 점점 더 민감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고통공포가 그 자체로 고통을 유발하기도 한다. 삶의 지속적인 무의미함 자체가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원인이라는 분석도 내놓는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도 고통공포를 키우는 원인이다. 저자는 사람들이 잠재적인 테러리스트처럼 취급되는 현실을 우려하며 '팬데믹 시대에 타자의 고통은 사건의 수로 해체될 뿐'이라고 적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공감의 상실을 낳고, 나아가 정신적인 거리두기로 바뀌어 타자의 고통에 무감각해지는 현상이 가속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렇다면 고통이 사라진 세상에서 인간은 행복할까? 저자는 언젠가 모든 고통이 사라진, 불멸하는 신인류의 세상이 올 수도 있겠지만 인류는 진짜 삶을 그 대가로 치러야 할 것이라며 고통 없는 삶이 오히려 사람들을 행복에서 멀어지게 만든다는 점을 강조한다. 고통 없는 세상은 ‘같은 것의 지옥’이며 죽음과 고통은 서로 뗄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모든 고통을 제거하려는 자는 죽음 또한 없애야 할 것이다. 그러나 죽음과 고통이 없는 삶은 인간의 삶이 아니라 좀비의 삶이다. 인간은 불멸에 도달할 수도 있겠지만 삶을 그 대가로 치러야 할 것이다.” 1만2,800원.
/최성욱 기자 secret@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