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이재용 사면 요구는 타당하다

김승욱 중앙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한국제도경제학회장

반도체 산업 치열한 경쟁에 위기

신속한 결단 위해 최고 지휘자 필요

과감한 투자·의사결정 늦어지면

삼성전자 세계 1위 지위 잃을 수도








경제계, 정치계, 종교계, 국민청원 게시판 등 사회 곳곳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면 여론이 크게 일고 있다. 재계는 치열해지는 반도체 산업 경쟁 속에서 총수 부재로 과감한 투자와 결단이 늦어지면 삼성전자가 쌓아 올린 세계 1위의 지위를 잃을 수도 있다며 사면을 요구하고 있다. 이 부회장이 화이자와의 협상 실마리를 풀어줬다는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백신 특사 등 민간 외교에도 이 부회장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여러 여론조사에서도 사면에 찬성하는 의견이 70% 내외로 20%대에 머무는 반대 의견보다 월등하게 많다.



그러나 청와대와 법무부에서는 사면에 대해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사면 반대 측에서는 이 부회장의 사면은 전형적인 재벌 봐주기라며 비난한다. 사면 여론이 우세한 점에 대해서는 재벌의 물량 공세 때문이며 여론몰이라고 주장한다. 이 부회장 구속 이후에도 삼성전자 매출과 영업이익이 크게 늘었다는 점을 들어 사면이 불필요하다고 한다. 임원만 1,000명이 넘는 삼성에서 총수가 없다고 회사가 안 돌아가느냐며 아직도 시스템에 의해 삼성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이번 기회에 바꿔야 한다고도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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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든 기업이든 시스템이 돌아가게 해야 한다는 주장은 평상시에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위기의 경우에는 다르다. 최고 지도자는 매우 급한 위기의 순간에 최종 결단을 신속하게 내려야 하므로 필요한 것이다.

지금은 어느 때보다 심각한 위기 상황이다. 치열한 미중 기술 패권 경쟁에서 핵심은 정보기술(IT) 산업이다. 미국에서 시가총액 1위부터 8위까지의 기업이 모두 실리콘밸리에 있다. 전기자동차, 자율주행차, 스마트폰 혁명,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 등으로 반도체의 중요성이 나날이 커지고 있다. 미국은 한국·대만·일본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여 중국과 대립하게 하고 있다. 냉전 시대처럼 미중 갈등에서도 역시 한국은 최전방에 놓이게 됐다. 또 미국은 반도체 생산국들에 미국의 영토 안에서 생산하도록 요구하고 있고, 반도체 경쟁도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이런 시대에 삼성전자의 부문별 사장이라도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크고, 삼성의 미래가 걸린 의사 결정을 해야 할 일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이럴 때 총수의 부재는 모든 의사 결정이 지체되게 만들고 때를 놓치게 할 수 있다.

공화정 로마가 황제가 다스리는 제정 로마로 변하게 된 것은 국토가 너무 방대해지면서 시급하게 결정해야 할 일이 계속 일어나는데, 원로원에서 토론하다가 신속한 결정을 못 한다는 의견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120조 원의 투자 재원을 가지고 시스템 반도체나 모바일 통신 분야, 차량용 반도체 등 미래의 먹거리를 위해서 인수합병(M&A)할 기업을 선택하고 있다. 신중한 논의를 해야 하지만, 결국 최종 결정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오너 총수다. 지금 같은 중요한 시기에 감옥에서 최종 의사 결정을 내리기는 어렵다. 논의만 무성하게 하다가 때를 놓칠 수 있다.

최고 의사결정권자의 부재로 인한 부정적 결과는 적어도 상당한 시간이 지나야 나타난다. 아날로그 TV의 패자였던 소니나 핀란드의 노키아가 무너진 것을 기억해야 한다. 소니도 디지털 시대가 올 것을 알았지만 전문 경영인들이 책임지기에는 너무 불확실하고 큰 투자여서 미래를 위한 과감한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반면에 삼성의 이건희 회장은 총수였기 때문에 과감한 투자를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그 결과 삼성의 한 해 이익이 일본의 모든 전자 회사의 이익보다 큰 역사를 이뤄냈다.

삼성전자는 한국의 큰 자산이고 이 부회장은 인정하든 안 하든 현실적으로 세계 정보통신 업계의 리더다. 미중 패권 전쟁의 이 중대한 시기에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인 삼성전자의 총수를 구속하는 것이 무슨 이익이 있는가. 사면법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특별사면 대상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한다.

/여론독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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