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금 80조 9,017억 원, 수요예측 경쟁률 1,883 대 1.’
기업공개(IPO) 신기록 제조기로 불린 SK아이이테크놀로지(361610)(SKIET)의 상장 첫날 주가는 초라했다. 수요예측부터 공모 청약까지 시장의 엄청난 관심을 받았던 만큼 상장 이후에도 ‘따상(시초가가 공모가 2배에서 형성된 후 상한가)’이나 ‘따상상’ 등을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최근 증시의 관심이 성장주에서 경기민감주 등으로 이동한 데다 높은 밸류에이션과 코스피 하락 등이 한꺼번에 겹치면서 공모주 ‘따상 신화’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상장 타이밍 안 좋았나…첫날 VI 네 차례나 발동=11일 유가증권시장에서 SKIET는 시초가(21만 원) 대비 26.43%(5만 5,500원) 내린 15만 4,5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날 SKIET는 개장 직후 공모가(10만 5,000원)의 2배인 21만 원에서 시초가를 형성한 뒤 소폭 상승세를 보였다. 하지만 이내 급락하며 하락 폭을 키워 ‘따하(시초가보다 가격이 내려 하한가가 된 것)’ 부근까지 떨어지며 첫 거래를 끝냈다. SKIET는 첫날 주가가 시초가 밑으로 급락하며 장중 변동성완화장치(VI)가 네 차례나 발동되기도 했다.
SKIET는 2차전지 리튬이온 배터리의 필수 소재 중 하나인 ‘분리막’을 생산한다. 그중에서도 전기차용 배터리에 탑재되는 습식 분리막 부문 세계 1위 사업자로서 성장 잠재력이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럼에도 상장 첫날 SKIET의 주가가 하락한 것은 간밤 미국 나스닥 시장 등 글로벌 시장 업황이 좋지 않았을 뿐 아니라 기술주의 약세 등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미국이 경기회복 국면에 접어들며 나스닥 등 기술주 중심의 시장보다는 경기회복의 수혜를 받을 수 있는 기존의 대형주 중심의 시장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전날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종합주가지수는 2.55% 하락한 1만 3,401.86에 거래를 마쳤고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0.1%),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지수(1.04%) 등도 일제히 하락 마감했다.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 가능성을 시사하며 기술주나 성장주가 주축이 된 나스닥 시장이 위축됐다. 이날 모건스탠리는 아시아 테크섹터(하드웨어) 실적 성장의 상승 정점 후 하강세(피크아웃)를 이유로 의견을 하향했고 씨티증권 역시 같은 이유로 보수적인 가이던스를 제시했다.
◇공모주 과대평가 ‘경고’…“SKIET 목표주가 10만~16만 원”=상장 첫날 SKIET는개인과 기관이 3,531억 원, 146억 원어치를 사들인 가운데 외국인이 3,620억 원을 순매도하며 하루에만 1,118만 주가 거래됐다. 이날 유통 가능한 주식은 전체 발행 주식의 15.04%에 해당하는 1,072만여 주였다.
증권가에서는 시가총액 20조 원에 달하는 SKIET의 가치 평가가 과도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SKIET의 기술 경쟁력은 충분하지만 분리막 산업이 가장 많은 캐펙스가 요구되는 산업인 만큼 주가가 상승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으로 미국 공장 증설 등을 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전문가들은 SKIET의 적정 주가로 10만~18만 원을 제시했다. 유안타증권은 적정 주가를 10만~16만 원으로 제시했고 하나금융투자는 14만 8,000원, 메리츠증권은 18만 원을 제안했다.
황규원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상장 이후 주가는 오버슈팅 과정을 지나 3~6개월 후부터 적정 가치에 수렴할 것으로 전망된다”며 “전고체전지 위협이 크게 부각되기 전까지 적정 주가 범위는 10만~16만 원으로 제시한다”고 말했다. 김현수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SKIET의 주가 전망 핵심은 다른 업체 대비 밸류에이션 프리미엄을 부여받을 수 있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며 “자본력, 소재 산업의 진입 장벽, 원가 구조 등을 감안했을 때 목표 주가는 14만 8,000원”이라고 설명했다.
◇반도체 등 성장주 급락…개인 4조 ‘매수’ 역대 네 번째=SKIET가 상장 첫날 급락 쇼크를 받은 것은 개별 종목의 이슈와 함께 시장 전체 분위기와도 무관하지 않다는 평가다. 이날 코스피지수가 1%대 하락세를 보인 것을 비롯해 일본과 대만 증시는 3% 이상 급락하면서 전날 미국 증시 하락세를 고스란히 반영하는 모양새였다.
이날 코스피지수는 사상 최고점을 뚫은 지 단 하루 만에 3,200 선까지 다시 밀려났다. 다만 개인투자자들은 상승장에 대한 큰 기대로 두 달 반 만에 최대 순매수에 나섰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39.87포인트(1.23%) 하락한 3,209.43으로 장을 끝냈다. 장중 한때 3,200 선이 깨지기도 했다. 삼성전자가 2.40% 하락하며 지난 2월 26일 이후 하루 최대 낙폭을 기록했고 SK하이닉스도 5.38% 급락하는 등 반도체주 하락이 시장을 끌어내렸다. 코스피에서만 외국인과 기관은 각각 2조 2,092억 원, 1조 3,503억 원을 순매도했다. 반면 개인은 ‘저가 매수’에 나섰다. 코스피에서 3조 5,555억 원 규모를 순매수했고 코스닥에서도 5,081억 원을 사들였다. 하루 순매수 규모로 올 2월 26일(총 4조 1,768억 원) 이후 최대이며 역대 네 번째다. 개인은 이날 삼성전자를 1조 2,665억 원 순매수해 전체 순매수액의 약 36%를 쏟아부었다. SK하이닉스(6,232억 원), 네이버(3,013억 원)에서도 매수 우위를 보이는 등 낙폭이 큰 대형주 위주로 매수에 나섰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인플레이션 우려와 빅테크 투자 심리 위축, 나스닥과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 급락에 따른 투자 심리가 악화했다”며 “공매도 재개 이후 수급의 변화가 가시화되는 상황에서 물가 지표와 옵션 만기가 맞물린 구간으로 심리적·수급적 변동성이 클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박시진 기자 see1205@sedaily.com, 이완기 기자 kinge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