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러시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을 계기로 협력관계를 뽐내고 있다. 미국 CNN 방송은 12일 홍콩발 기사를 통해 중국과 러시아가 개발도상국들을 겨냥한 백신 공급을 추진하면서 어느 때보다 밀착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에 따르면 지난달 19일까지 '선전 위안싱 제네-테크'등 중국 사기업 3곳은 러시아의 코로나19 백신 '스푸트니크 V' 생산 계약을 러시아직접투자펀드(RDIF)와 체결했다. 이들 기업 3곳이 중국에서 생산할 스푸트니크 V 백신의 총 규모는 2억6,000만 회분이나 된다. 스푸트니크 V는 현재 전 세계 60여개국에서 사용 승인을 받았다. 스푸트니크 V는 올해 2월 세계적인 의학 학술지 '랜싯'에 이 백신의 예방 효과가 91.6%에 달한다는 3상 결과가 공개되면서 평가가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다.
CNN은 중국 기업들과 RDIF의 계약이 백신 문제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국제적 목표가 부합한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해석했다. 중국과 러시아는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백신 확보에서 세계적으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하는 가운데 나란히 개발도상국들의 마음을 얻는데 공을 들이고 있다.
미국 듀크대에 따르면 캐나다, 영국, 뉴질랜드 등 일부 국가들은 전체 인구의 3배 규모에 접종할 수 있는 백신을 넉넉히 확보한 상태다. 반면 많은 국가는 아직 국민 절반에 접종할 백신조차 구하지 못했고 이들 국가 중 일부는 코로나19 감염 사태가 심각하다. 미국 등 선진국들이 화이자-바이오엔테크 백신 등 서구 제약사들의 백신을 선점해 개발도상국들의 고민이 연일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나 중국은 개발도상국들의 백신 문제 해결을 돕는다며 국제적 이미지를 개선하고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백신 외교'를 꾀하고 있다고 CNN은 진단했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 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올해 3월 "백신을 비축하는 일부 국가들과 다르게 우리는 많은 사람이 면역력을 갖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비서구권이 개발한 코로나19 백신 중 세계보건기구(WHO)로부터 긴급 사용 승인을 받은 제품은 현재까지 중국 시노팜 백신이 유일하다. 그러나 중국이나 러시아의 코로나19 백신은 세계적으로 널리 퍼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미국의 영향력이 큰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이 대규모로 러시아 및 중국의 백신을 구매했다. 듀크대에 따르면 아르헨티나는 스푸트니크 V 백신 3,000만 회분과 시노팜 백신 400만 회분을 주문했다. 동남아시아 국가 인도네시아는 시노백 백신을 1억2,500만 회분 이상 구매했으며, 터키는 중국산 백신 1억 회분을 구매했다. 올해 2월 RDIF는 스푸트니크 V 백신의 구매 요청이 25억 회분 이상 있다고 밝혔다.
CNN은 중국과 러시아의 백신 생산 공조에는 국제적 수요뿐 아니라 양국 정상의 친분이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중국과 러시아는 과거 사회주의권 국가로 오랫동안 협력해왔는데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수년간 '찰떡 공조'를 과시해왔다. 푸틴 대통령은 2016년 중국 신화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양국 신뢰가 전례 없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시 주석은 2018년 6월 국가훈장 제도 설립 이래 처음으로 최고 권위의 '우의훈장'을 푸틴 대통령에게 수여하며 "가장 존경하는 대국 지도자이자 절친한 친구"라고 칭했다. 2019년 중국이 미국과 무역전쟁을 벌일 때 중국과 러시아는 무역, 에너지, 과학기술 등 여러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며 미국을 견제하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러시아와 중국이 백신 분야까지 공조를 확대하자 서방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 3월 러시아와 중국이 백신을 내세워 개발도상국들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서방 국가들은 인권 등 다른 문제에서도 러시아와 중국을 겨냥한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주요 7개국(G7) 외교장관들은 이달 5일 중국과 러시아의 국제질서 위협과 인권 침해를 비판하고 코로나19 백신 생산 확대를 위해 협력한다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박신원 인턴기자 shin01@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