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 기업의 경영진과 소액주주들 간 갈등이 격화하고 있다.
소액주주들은 신약 개발을 위한 임상에서 실패한 기업에 대해 대표이사 등 경영진 해임을 요구하기도 하고, 이사들의 보수가 많은 기업에게는 한도를 낮추라고 제안하기도 한다. 또 최근 공매도가 부활하면서 주가가 예상 보다 크게 하락한 기업에 대해서는 “주주가치를 제고하라”고 요청하고 있다. 지난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바이오 관련 업종이 금융투자시장에서 주목 받으면서 ‘동학개미’ 비중이 높아지자 소액주주들의 목소리도 함께 커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3일 업계에 유전자 치료제 신약에 대한 기대감으로 코스닥 시가총액 2위까지 올랐다가 현재 50위권으로 밀려난 헬릭스미스(084990)는 소액주주들과 심각한 내홍을 겪고 있다. 이 회사 소액주주 비상대책위원회는 오는 7월 임시 주주총회를 열어 대표이사 등 이사 전원을 해임하겠다며 경영진을 압박하고 있다. 총 발행주식의 3% 이상을 보유한 주주는 회사에 임시주총 소집을 요구할 수 있다. 비대위가 주주들로부터 위임장을 확보한 지분은 37% 가량에 달한다. 비대위는 임시주총 전까지 50% 이상의 의결권을 확보해 새로운 경영진을 선임할 계획이다. 현재 헬릭스미스 최대주주인 김선영 대표의 지분율은 6% 가량에 불과하다.
이 회사가 소액주주들과 갈등을 빚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19년 당뇨병성 신경병증 치료제 ‘엔젠시스(VM202)’가 임상3-1상에 실패하면서부터다. 여기에 헬릭스미스가 주력 비즈니스와 관계없는 고위험 사모펀드에 약 2,500억원을 투자해 손실을 본 데다, 지난해 11월 진행했던 유상증자에 최대 주주인 김 대표가 참여하지 않으면서 주주들의 불만이 커졌다. 주가도 지난해 말 3만7,800원(12월 14일 기준)에서 현재는 3만 원대 초반으로 떨어졌다.
크리스탈지노믹스(083790) 소액주주들은 최근 법원에 주주명부 열람 등사 신청을 냈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였다. 다른 주주들의 위임을 받아 힘을 키우기 위해서는 주주명부 열람이 필수적이다. 이 회사 전체 주식의 80%가 넘는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소액주주들은 회사 측이 유상증자 등을 남발해 유통 주식수가 상장 이후 8배 급증, 주주가치가 훼손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지분을 더 끌어모아 주주총회 때 경영진을 상대로 책임을 묻는 등 적극적인 행동에 나설 계획이다.
엑세스바이오(950130)는 이사들의 보수 한도 상향을 놓고 소액주주들과 갈등을 겪었다. 일부 주주들의 반대의결권 행사에도 보수 한도 상향 안건이 주총을 통과하자 소액주주들이 지난달 ‘주주가치 제고 실행하라’는 문구를 적은 트럭을 이용해 시위를 열었다. 엑세스바이오의 주가는 지난해 한 때 4만9,750원(8월 19일)까지 오르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2만 원 중반대를 유지하고 있다. 주가가 부진한 상황에서 이사들의 보수 한도가 오르자 소액주주들의 불만이 폭발한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최대 수혜주로 꼽히는 씨젠(096530)은 올 초 19만 원(1월 7일)까지 올랐던 주가가 7만 원선으로 떨어지자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다시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내용의 글들이 다수 올라왔다. 공매도 재개 후 주가 유지를 위한 경영진의 대응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앞서 씨젠 소액주주들은 지난 3월 “실적에 비해 주가가 부진한 것은 천종윤 대표가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노력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며 천 대표의 연임에 반대하는 트럭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바이오 업계에 소액주주가 대거 편입되면서 비율이 80%~90%까지 올라가며 주요 주주로 자리잡았다”며 “소액주주들이 경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장점도 있지만, 주주대응 부서가 하루종일 민원 전화에 시달리는 등 소모적인 일도 벌어지고 있어 아쉽다”고 말했다.
/이주원 기자 joowonmai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