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당국에서 품질관리 수준이 높은 중소·중견 회계 법인이 감사인 지정제에서 혜택을 보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한다. 모든 회계 법인을 한꺼번에 비교하는 대신 대형 법인은 대형 법인끼리, 소형 법인은 소형 법인끼리 경쟁하도록 해 중소형 회계 법인이 품질관리 역량을 키우도록 유도하겠다는 취지다.
13일 회계 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비슷한 규모의 회계 법인끼리 품질관리 수준을 평가하는 쪽으로 감사인 지정제 개선안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지난해 금융위가 밝힌 감사인 지정제 개선안에 따른 것이다. 감사 품질이 높은 회계 법인을 감사인 지정에서 우대하는 방안을 마련해 법인 간 경쟁을 활성화하려는 취지다. 감사인 지정제는 금융위 산하 증권선물위원회가 지정한 회계 법인을 감사인으로 선임·변경하도록 요구하는 제도로 크게 직권 지정과 주기적 지정제로 나뉜다. 특히 지난 2019년부터 주기적 지정제가 시행되면서 그 중요성이 커졌다.
구체적으로는 ‘군별’로 점수를 비교하는 것을 전제하고 개선안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금융 당국은 공인회계사 수, 감사 업무 매출액, 감사 대상 상장사 수 등을 기준으로 회계 법인을 ‘가~마’군으로 분류하고 있다. 가군에는 소위 ‘빅4(삼일·안진·삼정·한영)’ 등 대형 회계 법인을 배치하고 마군으로 갈수록 회계 법인 규모가 작아지는 방식이다. 높은 군에 있을수록 규모가 큰 기업의 감사인으로 지정받을 수 있다.
금융위는 △군내 회계 법인끼리 비교·평가하는 방법(군별 표준화) △가~마군 상관없이 전체 회계 법인의 품질관리 수준을 비교하는 대안(전체 표준화) △전체 표준화 후 나군 이하에 가산상수를 부여하는 방안을 선택지로 뒀다.
이 중 군별 표준화는 중소형 회계 법인에, 전체 표준화는 대형 회계 법인에 유리한 대안으로 거론됐다. 만약 전체 표준화 방식을 적용할 경우에는 비교적 품질관리 인적·물적 자원이 많은 대형 회계 법인이 더 큰 점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회계 업계 간담회와 자본시장연구원 연구 용역 등을 거치면서 군별 표준화 쪽에 힘이 실리고 있는 상황이다. ‘품질관리 경쟁을 촉진한다’는 개선안 취지를 고려하면 군별 평가 방식이 더 합당하다는 해석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만약 대형 회계 법인과 중소형 회계 법인이 동일 선상에서 비교를 하게 될 경우 중소형 법인이 품질관리 분야를 ‘질 싸움’으로 여길 개연성이 크다는 의미다. 한 회계 법인 대표는 “(전체 표준화를 하게 되면) 대형 법인의 점수가 무조건 좋아지기 때문에 규모별 특수성을 고려해 군별로 평가를 하는 것이 맞다는 의견이 나온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조만간 금융위가 관련 방안을 확정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품질관리에 따른 인센티브를 얼마나 강하게 제공할 것인지 등이 고려 사안이 될 것으로 보인다. 중소형 회계 법인이 독립채산제에서 머무르지 않고 ‘원펌’ 체제를 구축하는 쪽으로 유인책을 제공하는 방안도 수반돼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회계 업계의 한 관계자는 “금융위가 5월 말, 6월 초에는 이 건에 대해 확정하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금융위의 한 관계자는 “아직 관련해서 논의 중”이라며 “확정된 내용은 없다”고 밝혔다.
/심우일 기자 vit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