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가 전장 사업의 경쟁력을 더 키우기 위해 카카오를 파트너로 택한다. 카카오모빌리티를 통해 미래 자율주행차 서비스의 핵심 플랫폼인 빅데이터 부문의 경쟁력을 단숨에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스마트폰 사업 철수 이후 그룹의 명운을 걸고 전장 사업 강화에 나선 만큼 앞으로 만들어갈 성과는 더욱 주목을 받는다.
18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LG전자는 카카오모빌리티와의 투자 협상에 나섰다. 투자 규모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최소 수백억 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LG전자의 카카오모빌리티 투자가 진행된다면 국내 제조 대기업과 정보기술(IT) 플랫폼 기업의 ‘이종 융합’을 통한 산업 경쟁력 강화의 사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 IB 업계 관계자도 “투자 규모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LG전자가 모빌리티 분야에서 앞서가는 카카오와 손을 잡았다는 것에 더 의미가 있다”며 “앞으로 만들어낼 시너지에 관심이 간다”고 말했다.
글로벌 업체의 행보만 봐도 LG전자-카카오모빌리티가 왜 손을 잡으려는지 알 수 있다. 이미 테슬라를 비롯한 미래형 자동차 생산업체들은 OTA(over the air·무선 업데이트) 기능을 장착, 차량을 통해 각종 빅데이터를 수집·저장·처리하는 영역으로 넘어갔다. 현대차그룹이 빅데이터 처리 기술을 가진 현대오토에버와 지도 기술을 가진 현대엠엔소프트를 합병한 것이나 폭스바겐이 지난 2019년 카소프트웨어 조직을 신설해 연구개발(R&D) 인력을 1만 명으로 늘리고 70억 유로를 투자해 자체 운영체제(VW.OS), 클라우드, 전기 전자 아키텍처를 개발하려는 계획을 발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LG전자와 카카오모빌리티는 각자 상대적으로 취약한 부문을 보완해주는 기능이 있다.
카카오 택시에서 출발한 카카오모빌리티는 택시 기사와 이용자 모두에서 모빌리티 업계 1위를 굳건히 유지하고 있다. 더욱이 카카오모빌리티는 자율주행 서비스를 고도화하기 위한 도심 교통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 외국계 투자가의 발길이 이어진 이유다. 실제 칼라일(2,199억 원), TPG(5,000억 원)등 사모펀드(PEF)의 투자를 받았고 올 4월에는 구글(560억 원, 1.69%)도 투자 대열에 합류했다. 충분한 데이터는 있지만 전장 분야의 기술은 부족하다.
반대로 LG전자는 전장 사업 부문에서 지도 사업을 제외한 사실상 전 부문을 섭렵하고 있다. 차량용 인포테인먼트부터 △전기차용 부품 △자율주행 부품 △차량 램프 등 대부분의 부품을 생산하고 있다. 계열사를 통해서는 전기차 배터리와 디스플레이도 만든다. 스마트폰 사업은 철수했지만 5세대(5G) 통신 기술을 활용한 텔레매틱스 기술도 가지고 있다. 이뿐 아니다. LG유플러스가 확보한 고객 데이터 역시 자율주행 서비스에 활용할 수 있다. 이미 LG유플러스는 5G 기반의 자율 주차를 시연했고 하반기에는 상용화 기술을 선보일 예정이다. LG유플러스는 카카오내비를 통해 최적의 경로를 안내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 다만 차량 내부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지도 경쟁력은 약한 편이다.
결국 두 회사의 협업은 상대의 약점을 보완하면서 더 큰 강점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IB 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전장 사업 강자인 LG전자와 교통 테이터를 갖고 있는 카카오모빌리티는 서로의 약점을 보완하는 협업이 가능하다”면서 “두 회사가 협업을 하면 폭발적인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지만 두 회사와 연이 있는 인물들이 이번 딜에 자주 등장하는 것도 투자 성사의 가능성을 높게 보는 근거다. 백상엽 카카오엔터프라이즈 대표는 LG CNS전략사업부 사장 출신이다. 또 LG그룹은 보스턴컨설팅그룹에 경영 컨설팅을 맡겼는데 이 작업은 BCG 싱가포르 법인에 소속된 박성훈 전 카카오엠 대표가 지휘하고 있다. 박 전 대표는 카카오에 합류하기 전 CJ그룹 등 대기업의 전략 담당 임원을 맡아 굵직한 인수합병(M&A)을 이끈 전문가다.
한편 LG전자는 카카오모빌리티 투자를 넘어 보다 큰 그림을 그리는 움직임도 있다. 올해 3월 글로벌 소프트웨어 기업 룩소프트와 출범시킨 합작사 알루토는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플랫폼을 기반으로 뒷자석 엔터테인먼트 시스템 등을 선보일 예정이다. 또 LG전자는 지난해 자동차 부품사인 마그나와 합작 법인을 설립하고 전기차 파워트레인 제품 생산 계획을 발표했다. LG전자는 이와 별개로 마그나 사업 부문 일부를 인수한 국내 1위 자동차 열관리 부품 기업 한온 시스템의 인수도 고려하고 있다.
/임세원·윤민혁 기자 why@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