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임대차보호법이 시행되기 전 실거주 목적으로 임차인이 있는 아파트를 구매했다면 임대차 갱신을 거절할 수 있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법 개정 전 제도 시행을 예측할 수 없었던 만큼 ‘임대차를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에 포함된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40단독(문경훈 판사)은 서울 강남구 일원동 아파트 소유권자인 A 씨 부부가 임차인 B 씨 가족을 상대로 낸 건물 인도 소송에서 “임대차 계약 종료일에 5,000만 원을 받고 아파트를 넘겨라”며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A 씨 부부는 지난해 7월 5일에 실거주 목적으로 B 씨가 임차인으로 있는 아파트 매수 계약을 하고 같은 해 10월 30일 소유권 이전 등기를 마쳤다. 이 과정에서 B 씨 측은 같은 해 7월 31일 임대차보호법이 시행되자 기존 집주인에게 임대차 계약 기간 연장을 요구했다가 거절당했다. A 씨는 소유권을 넘겨받은 이후에도 B 씨가 임대차 계약 갱신을 요구하자 법원에 건물 인도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원고들이 개정된 주택임대차보호법 시행 전 실거주 목적으로 아파트 매매계약을 맺어 계약 기간이 끝나면 자신들이 실제 거주할 수 있다고 믿었을 것”이라며 “계약 갱신 요구를 거절할 수 있는 ‘그 밖에 임대차를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법원 관계자는 “주택임대차보호법 시행 전에 매매계약을 맺고 계약금까지 지급한 경우에는 임대차 계약 갱신 요구를 거절할 정당한 사유가 있다는 취지의 판결”이라며 “국토교통부가 같은 취지의 유권해석을 내린 바 있지만, 판결로 나온 것은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B 씨 부부는 판결에 불복해 항소하고 현금을 공탁하는 조건으로 항소심 판결이 나올 때까지 집행정지 결정을 받은 상태다. 항소심은 같은 법원 민사항소3-3부(주채광·석준협·권양희 부장판사)가 심리한다.
한편 지난 3월 수원지법 민사2단독(유현정 판사)은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시행된 이후 실거주 목적으로 주택을 매입했으나 기존 임차인이 계약 갱신 요구권을 행사한 사건에 대해서는 새 주인은 임차인에게 나가 달라고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한민구 기자 1min9@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