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미국 대선에서 패배한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한 파티장에서 윌리엄 맥체스니 마틴 주니어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을 만났다. 트루먼 대통령은 마틴 의장을 한참 노려보더니 ‘배신자’라고 쏘아붙이며 곧바로 파티장을 떠나버렸다. 그는 재임 기간 중 금리 인상을 단행했던 마틴 의장 때문에 선거에서 졌다며 서운한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고 한다. 마틴 의장은 1951년 4월부터 1970년 1월까지 재임하며 정권의 눈치를 보지 않고 통화 정책을 펼쳐 당시 경제 호황의 초석을 다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마틴 의장은 중앙은행의 역할을 ‘펀치 볼(punch bowl) 치우기’에 비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취임 초부터 “파티가 너무 달아오르면 펀치 볼을 치우는 게 연준이 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펀치 볼은 와인에 과일을 넣은 ‘펀치’라는 칵테일 음료를 담는 그릇이다. 모든 사람을 기분 좋게 취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파티의 악당이 중앙은행의 역할이라는 뜻이다. 이후 펀치 볼은 중앙은행 통화 정책의 상징으로 굳어졌다. 경제학계에선 중앙은행의 역할과 관련해 파티에서 흥을 깨는 ‘파티 푸퍼(Party Pooper)’라는 표현까지 쓰고 있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1979년 폴 볼커를 연준 의장으로 임명할 당시 참모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볼커의 인플레이션 억제 정책이 이듬해 대선 패배로 이어질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 미국 경제의 화려한 부활은 카터 전 대통령이 재선 실패의 위험을 무릅쓰고 물가 안정의 기반을 다진 덕분일 것이다.
로런스 서머스 전 재무장관이 최근 한 인터넷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연준의 역할은 파티가 한창 무르익을 때 펀치 볼을 치워버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플레이션 경고를 무시하는 연준을 정면으로 비판한 것이다. 연준의 4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에도 처음으로 ‘자산 매입 축소’ 방안이 등장했다. 중앙은행이 정치 입김에 휘둘리지 말고 ‘유동성 파티 후’를 대비해야 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파티가 길어질수록 씻어야 할 접시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말을 되새길 때다.
/정상범 논설위원 ssang@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