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 시간) 한미정상회담에서 ‘반도체·배터리 대미 투자’와 ‘비핵화 공조’를 맞교환하는 결과를 도출했다. 글로벌 백신 공급을 확대하기 위한 ‘한미 포괄적 글로벌 백신 파트너십’도 맺었다. 신기술과 백신 패권을 두고 미중 간 힘겨루기가 격화하는 가운데 한국이 미국 중심의 공급망에 편입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미국과 중국 간 줄타기 외교를 벌여온 한국이 한미정상회담을 계기로 미국 주도의 반중 전선에 공조한 데 따른 성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문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첫 정상회담을 열고 공동성명에서 “반도체, 친환경 전기자동차 배터리, 의약품 등 우선순위 부문을 포함해 우리 공급망 내 회복력 향상을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고 선언했다. 반도체와 전기차 배터리 등 4대 핵심 품목을 지정해 중국 견제에 사활을 걸고 있는 미국이 한국과 산업 육성 파트너로서 손을 맞잡은 것이다. 아울러 한미 정상은 “각국의 강점을 발휘해 안전하고 효과적이라고 입증된 백신 생산 확대를 위해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백신을 지원하는 중국에 대한 미국의 견제가 본격화되는 수순으로 해석된다. 이와 별개로 미국은 한미 동맹 차원에서 주한미군과 접촉하는 한국군 55만 명에 대한 백신 직접 지원도 약속했다.
두 정상은 한미 미사일지침(RMG) 종료도 공식화했다. 탄도미사일 최대 사거리 및 탄도 중량에 대한 제한이 풀려 한국의 ‘미사일 주권’을 확립하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이 역시 동맹국인 한국의 군사력 확대를 통해 미국이 중국을 압박하려는 목적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두 정상은 중국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남중국해·대만해협·쿼드 문제도 공동 성명문에 담았다. 남중국해와 대만해협은 미중 간 군사적 충돌 발생 우려가 높은 지역으로 미국 측의 요구를 수용해 한국이 미 측에 지지를 보낸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과 일본·인도·호주 등이 참여한 비공식 안보 협의체로 중국 견제 성격이 강한 쿼드와 관련해서는 “개방적이고 투명하며 포용적인 지역 다자주의의 중요성을 인식했다”고 합의했다.
대신 문 대통령은 바이든 정부의 새로운 대북 정책에 한국 정부의 입장을 반영하는 결과를 얻어냈다. 도널드 트럼프 전 정부 당시 이뤄진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공동성명 등 기존 남북·북미 간 합의를 바이든 정부가 인정하며 북한이 협상장으로 나올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준 셈이다. 김동엽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한마디로 미중의 전략적 대결에서 바이든 정부의 동맹 강화 정책에 굳건한 한미 동맹으로 화답한 한미정상회담이었다”고 평가했다.
/워싱턴=공동기자단 서울=허세민·김혜린 기자 semi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