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우리 게임 한번 해볼까? 지금부터 휴대전화 문자, 통화 내용을 다 공유하는 거야.”
재미 삼아 건넨 제안은 예측 불가의 파국(?)으로 흘러간다. 당사자에겐 죽을 맛인 상황이지만, 보는 이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다. 누가 그러지 않던가. 제일 재밌는 게 싸움 구경이라고.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는 긴장의 게임, 폐부 찌르는 웃픈 유머와 ‘관계’라는 개념을 향한 보기 좋은 한방까지. 동명 영화를 무대화 한 연극 ‘완벽한 타인’이다.
네 명의 죽마고우와 그들의 아내 셋, 이렇게 7인이 모였다. 화기애애한 저녁 식사 중 누군가가 위험한 게임을 제안한다. 식사 자리에서 걸려오는 서로의 휴대전화 문자와 통화 내용을 공유하자는 것. 재미로 시작한 이 게임은 그러나 저마다 밖으로 꺼내고 싶지 않던 비밀스러운 무엇을 들춰내며 불편한 진실에 다가선다.
이탈리아 원작 영화 혹은 지난 2018년 리메이크된 한국 영화를 본 사람에겐 익숙한 스토리다. 하나둘 까발려지는 비밀이 극의 긴장을 요리하는 작품인 만큼 다수 관객이 ‘언제 어떤 폭탄이 터질지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은 이 공연이 극복해야 할 산이었다. 그러나 연극 버전은 굳이 새로운 설정을 넣거나 캐릭터를 바꿔가며 다름을 시도하지 않는다. 원작의 서사를 그대로 가져오되 현장성이라는 연극의 특성을 내세워 ‘진짜 싸움 구경’의 생생함으로 정면 승부하는 것이다. 이 생생함을 살리는 것은 오롯이 배우들의 몫이다. 7명의 캐릭터가 적지 않은 대사와 격앙된 감정을 주고받는 데다 편집으로 속도감을 조절할 수 없는 만큼 자칫 극 전체가 산만하게 흘러갈 수 있지만, 각각 공연·드라마에서 내공을 쌓아온 배우 조합은 빈틈없는 합을 맞춰 극으로의 몰입을 돕는다. 문자나 전화 알림음이 울릴 때마다 무대 뒤 스크린에 휴대폰 화면과 커진 동공, 불안함에 떨리는 손 등 익살맞은 영상이 함께 나오는데, 이 역시 이질감 없이 극 속에 잘 녹아든다. 다만 감정의 완급 조절 면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극 후반부에 ‘곧 터질 대형 한방’을 의식한 듯 인물 간 갈등이나 캐릭터의 감정 변화가 급격하게 이뤄져 조급함이 느껴진다.
사실 이 싸움 구경에서 거창한 의미를 찾는 것 자체가 거창하다. “이 극에는 교훈이나 메시지가 담겨있지 않습니다. 그저 곤란하고 재밌는 작가의 상상력이니 그냥 즐겨주세요.” 민준호 연출의 말마따나 ‘완벽한 남의 이야기’를 보며 ‘그럴 수 있다’고 공감하고 웃을 수 있는, 재밌는 작품이다. 그 이상 뭐가 더 필요하겠는가. 8월 1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시어터.
/송주희 기자 ssong@sedaily.com 사진=쇼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