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책꽂이]고집불통 경제학씨, 소통 좀 하시죠!

■더 나은 삶을 위한 경제학

로버트 스키델스키 지음, 안타레스 펴냄

경제학 인간행동 예측가능하다며

자연과학처럼 특정 법칙 만들려해

아집 버리고 다른 학문과 교류해야

현실 세계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

스스로를 '외부자'로 규정한 저자

신고전주의 경제학 문제점 꿰뚫어





세상 수많은 학문이 ‘더 나은 삶’을 지향하지만 그 중에서도 현실적인 의미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학문을 꼽으라면 아마도 많은 이가 경제학을 지목할 것이다. 가난 구제와 부의 축적, 국가의 번영 등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실제로 지난 300년 동안 수많은 경제학자들이 더 나은 삶을 목표로 다양한 경제 모델을 세상에 내놓곤 했다. 그 과정에서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과 토머스 맬서스의 ‘인구론’, 존 메이너드 케인즈의 ‘고용·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 등의 등장해 학계는 물론 사회 전반에 큰 충격파를 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30년 동안 인간의 경제 생활은 굉장히 복잡해졌다. 불평등이 극심해졌고, 2008년에는 글로벌 금융 시스템이 붕괴되기에 이르렀다. 자유 경쟁 시스템은 경제학자 앨프리드 마셜(1842~1924)의 표현처럼 “인간의 운명에 무관심한 채 길들지 않은 거대한 괴물처럼” 마구 날뛰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과연 경제학이 제 역할을 하고 있는 지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대다수 경제학자들은 그저 더 적합한 경제 모델을 찾기에 골몰해 있다. 이를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는지 원로 경제사학자 로버트 스키델스키가 결국 이렇게 외친다. 문제는 경제가 아니라 경제학이야!

존 메이너드 케인즈 전기 3부작으로 세계적 명성을 쌓은 스키델스키가 경제학의 방법론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책을 냈다. 국내 번역본의 제목은 ‘더 나은 삶을 위한 경제학’이지만 원제는 ‘What’s wrong with economics?(경제학이 왜 이러나?)’다. 더 도발적이고 직설적이다. 그렇다고 경제학을 마냥 공격하기 위해서 쓴 책은 아니다. 원로 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앞선 세대가 쌓아 올린 잘못된 지식의 벽을 무너뜨려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다음 세대에 강조하기 위해서다.

스키델스키는 책을 통해 글로벌 금융위기 예측에 실패한 이후 별다른 진보를 보이지 못하고 있는 주류 경제학, 즉 신고전주의 경제학의 문제점을 총체적으로 진단하면서 처방까지 모색한다. 모두 13장으로 구성된 책은 ‘방법론적 결함’에서 ‘학문적 불완전성’까지 촘촘하게 살펴본다.



책에서 스키델스키는 자신을 ‘외부자’로 규정한다. 경제학이라는 같은 프레임 안에 존재하는 경제학자가 아니라 경제학을 배우기에 앞서 역사와 정치를 먼저 연구한 학자로서 경제학을 프레임 밖에서 관찰하고 분석했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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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스키델스키/사진출처=로버트스키델스키닷컴로버트 스키델스키/사진출처=로버트스키델스키닷컴


그는 많은 경제학자들이 세상을 인간 로봇으로 가득한 곳으로 여긴다고 지적한다. 경제학자들은 인간 로봇들이 합리적 선택을 하는 존재이기에 그 행동을 예측할 수 있으며, 이를 분석해 특정 ‘법칙’을 세울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인간은 유일무이하게 창의적인 동물이다. 주변 환경 및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자기 행동의 도덕적 타당성을 고민하고 새로운 환경에 창조적으로 적응한다. 또 사고력과 상상력을 발휘해 자신과 세계의 미래를 수정해 나간다. 이렇듯 경제학이 마련할 수 있는 것은 ‘법칙’이 아니라 기껏해야 ‘경향’일 수 밖에 없음에도 경제학자들은 자연 과학자와 동일한 노선을 지향하려 한다. 스키델스키는 “경제학자들은 ‘물리학 선망’이라는 병을 앓고 있다”며 “충분한 데이터와 연산력만 갖추면 자신들이 인간 행동의 암호를 해독할 수 있다고 믿지만 이는 애초에 잘못된 생각”이라고 지적한다. 물리학에 대한 선망을 넘어 심리학, 사회학, 정치학, 역사학 등 사회과학과 협업한다면 경제학이 현실 세계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음에도 좁은 프레임 안에만 머문다고 비판한다. 고대 인도 우화인 ‘코끼리 만지는 맹인’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스키델스키는 과거 고전주의 경제학자들이 학문적 소통을 위해 일상적 언어로 통찰을 전달하려 한 것과 달리, 오늘날의 주류 경제학자들은 “오직 수학적 언어로만 말하려 하고 같은 학파의 하위 분파끼리도 소통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학문적 오만함에서 벗어나는 게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완전 경쟁 시장에 대한 맹목적 신뢰도 거둬야 한다. 스키델스키에 따르면 “주류 경제학자들은 최근 경제학이 100년 전 심지어 10년 전의 경제학보다 탁월하고, 과거 경제학자들의 실수를 일소했다고 주장하지만 실상은 여전히 끊임없는 논쟁으로 가득할 뿐”이다. 그렇다고 경제학이 무용하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경제학은 대단한 일을 해냈지만, 언제나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약속해온 게 문제였다. 이제는 그간의 아집을 버리고 다른 학문과도 적극 소통해야 한다고 그는 재차 강조한다.



책에는 경제학 역사 속 주요 학자만 180명 넘게 등장한다. ‘필립스 곡선’ ‘수확 체증’ ‘한계 효용’ 등 경제 용어도 적지 않게 등장한다. 경제학에 대한 배경 지식이 없다면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스키델스키처럼 외부자 또는 관찰자의 시선으로 경제학 300년 역사를 한눈에 훑어 볼 수 있다. 1만8,000원.

/정영현 기자 yhchung@sedaily.com


정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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